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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서관을 보면 그 나라가 보인다

등록 2022-01-21 04:59수정 2022-01-21 09:45

[한겨레Book]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
이효경 지음 ㅣ 유유(2021)

워싱턴대학은 미국 북서부 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립대학으로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인 시애틀에 위치한 만큼 특히 아이티·이공계 분야에 강세를 보여 지금까지 12명의 노벨상 수상자, 13명의 퓰리처상 수상자, 1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대학이다. 2021년엔 세계대학 순위 8위에 올랐다.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의 저자 이효경은 한국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뉴욕 컬럼비아대학 도서관을 거쳐 현재까지 워싱턴대학 도서관에서 한국학 사서로 일하고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워싱턴대학 동아시아도서관은 북미(미국과 캐나다) 14개 한국학 도서관 가운데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 다음으로 많은 한국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워싱턴대학 도서관에서 한국학 사서로 일하며 발굴·발견한 한국학 관련 도서들 가운데 극히 일부인 1900~1945년에 출판된 한국 책 44권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우리 선조가 펴낸 책들이 한국도 아닌 미국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을까?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승정원일기> 등 세계에 내로라 할 만한 기록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정부 수립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통치기록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나라이기도 하다. <황해문화>를 발간하면서 개인적으로 미국의 대학도서관 시스템에 경외감을 느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통권 100호 발간을 넘어 114호를 준비하는 지금에야 나름 알려진 잡지가 되었지만, 잡지를 처음 발간할 무렵만 해도 국내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전국 각지의 도서관에 잡지를 무료로 보내줘도 수취 거절당해 돌아오는 일조차 있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날엔가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 우리 잡지가 전권 소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것이 선진 제국의 저력이구나 하며 깜짝 놀랐다.

여러 권의 고전을 선정해 목록에 따라 간단한 소개와 의미를 해설하는 해제집류의 책들은 이미 꽤 여러 종이 출간되어 있지만,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은 그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 소개하는 44종의 책은 워싱턴대학 도서관에 수서된 다른 책들에 비해 더욱 가치 있고 중요한 책이라서가 아니라 한국학 사서인 저자 개인의 특별한 안목에 따라 선택된 것이다. 그 결과, 오래 전 이 땅에서 출판되었지만, 도리어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렵고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이역만리 해외(특히 미국)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와 미주동포사회가 출간한, 역사적으로는 가치가 있지만 쉽게 주목받지 못했던 책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첨단 디지털 문명시대에 여전히 책이 가진 물성과 도서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강의 시간에 권혁태(성공회대 일본학과) 선생께 들은 이야기다. 일본 유학시절 자주 다니던 대학도서관엔 나이 든 깐깐한 사서 선생이 있었다. 그만하면 안면이 익어 한번쯤 아는 체해줄 법도 한데, 사무적 대화 외에는 입을 여는 법도, 곁을 주는 법도 없었다. 어느 날엔가 정말 필요하고 보고 싶은 책이었지만 희귀 자료라 과연 대출을 해줄까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다. 사서 선생이 책을 내주며 엷은 미소를 머금고 “학생이 우리 도서관에서 이 책을 신청한 첫 번째 학생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 우리 도서관의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했단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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