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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엔지니어들이여 시민사회와 대화하라

등록 2006-02-16 17:48수정 2006-02-17 16:51

공학기술과 사회<br>
이장규·홍성욱 지음. 지호 펴냄. 1만5000원
공학기술과 사회
이장규·홍성욱 지음. 지호 펴냄. 1만5000원
‘가치중립성’ 뒤에 숨어
영향력 행사하는 공학기술
성찰 없으면 재앙 일으켜
‘기술은 가치중립적인가, 선도 악도 아닌 양날의 칼인가?’

달리 말해, 공학기술의 쓰임새는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하기 나름이고 기술을 발명하고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는 선과 악의 가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라는 물음이다. 기술 개발에 골몰하는 엔지니어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서울대 이장규(전기컴퓨터공학부)·홍성욱(생명공학부) 교수가 함께 지은 <공학기술과 사회>(지호 펴냄)는 ‘기술의 가치중립성’이란 담론 뒤에 숨어버린 공학기술, 그러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학기술과 엔지니어들에 대해 이런 근본 물음을 던지고 있다. 발견과 발명, 성공과 실패의 여러 기술사 사례들, 그리고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통해 이런 물음을 찬찬히 따지는 이 책은 ‘지속가능한 엔지니어의 길 찾기’다. 기술은 어떻게 태어나 변화하며, 인간·사회와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또 기술의 성공과 실패 요인은 무엇인지, 현대 공학기술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해석과 논의들을 한 자리에 모아 다뤘다.

이 책에 드러나는 현대 공학기술의 정체는 무엇보다 기업과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점점 거대해지는 기술 시스템, 급기야 스스로 굴러가는 ‘관성’을 지닌 기술 시스템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불확실성과 위험도 또한 더욱 커졌다. 누구도 결정적 책임을 지기 힘들게 됐다. 한편으론 눈부신 문명의 이기를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론 엄청난 기술재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공학기술은 발전할수록 더욱 자주 시민사회의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새만금·시화호·핵폐기장 문제 같은 기술전문가와 시민사회의 논쟁이 잦아지는 건 이런 배경에서 비롯한 것이다.

지은이들은 공학도와 엔지니어들을 향해 “기술을 가치중립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며 자신의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사용될지를 관찰하고 주시해야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기술은 어떻게든 사회가치를 담게 마련이다. 예컨대 1930~50년대 미국 뉴욕의 공원도로 건축가는 공원도로 위를 지나는 다리를 버스 높이보다 낮게 만들었는데, 이 탓에 흑인이 주로 타는 버스는 공원도로를 지나지 못하고 자가용을 모는 중산층 이상 백인들만이 공원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주의가 반영된 기술 사례다. 게다가 기술은 이제 여러 이해관계와 흩어져 있던 기술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거대 시스템으로 고착화하기에, 기술의 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초기 단계의 엔지니어들이 하는 구실은 더 중요해졌다. 또 대규모 댐 건설이나 간척 사업, 자연 관통도로 건설, 원자력발전소 건설처럼 자칫 잘못해 일어날 수 있는 위험과 파괴력은 더 커졌다. 그래서 인간과 사회에 늘 시선을 두며 반성과 성찰을 할 줄 아는 엔지니어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엔지니어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지은이들은 공학기술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면 시민의 참여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챌린저호 폭발사고나 스리마일 원전 참사에서 보았듯이, 기술전문가들조차 안전성을 100% 장담할 수 없게 된 현대 기술 시스템에서 엔지니어들은 사후 공청회 단계가 아니라 계획 수립 단계부터 시민사회와 열린 대화를 나눌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거다. “공청회나 국민투표는 모두 소극적인 시민 참여의 모델이다. 최근에는 더 적극적인 의미의 다양한 시민 참여 메커니즘이 각국에서 실험적인 차원이나 실질적인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적극적 시민 참여의 메커니즘으로는 합의회의, 시나리오 워크숍, 시민배심원, 시민자문회의, 규제협상 등이 있다.”(264쪽)


애초엔 앞바퀴가 엄청 컸던 자전거는 왜 공기타이어를 달고 같은 크기의 바퀴를 지닌 꼴로 바뀌게 됐을까, 증기기관을 개량해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의 와트와 무선전신을 발명해 전파왕국의 제왕으로 군림한 마르코니,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성 반도체와 시디엠에이 기술이 혁신과 성공을 거듭해 이룬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과학자와 달리 엔지니어만이 지닌 ‘공학기술적 세계관’은 어떤 것일까 등 일부 주제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학도와 엔지니어들한테 흥미로운 관심사가 될 만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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