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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동산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

등록 2022-01-21 04:59수정 2022-01-21 11:45

조남주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
아파트 주민들 욕망의 풍속도 그려
“쓰면서 괴롭고 부끄러웠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가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린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로 돌아왔다. 한국문학번역원은 <82년생 김지영>이 10개 언어권에서 30만부 넘게 팔리면서 최근 5년간 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문학 작품으로 꼽혔다고 발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가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린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로 돌아왔다. 한국문학번역원은 <82년생 김지영>이 10개 언어권에서 30만부 넘게 팔리면서 최근 5년간 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문학 작품으로 꼽혔다고 발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조남주의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는 일곱 작가의 합동 소설집 <시티픽션>(2020)에 실렸던 단편 ‘봄날아빠를 아세요?’가 모태가 되었다. 이 단편과, 여기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발전시킨 여섯 단편이 더해져 서영동 아파트 단지의 내밀하고 복합적인 풍경이 완성되었다.

그 풍경은 겉보기에 깔끔하고 안온한 듯하지만, 속내는 울퉁불퉁하고 곡절이 깊다. 까닭은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아파트가 사람들이 생활하고 휴식을 취하는 주거 공간에 머물지 않고 신분의 표징이자 욕망과 투기의 과녁이 되었기 때문. 이 소설은 아파트라는 문제적 공간과 그 공간이 제기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데,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구성원 가운데 그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많지 않을 것이기에 이 책을 읽는 일은 자신의 치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민망하고 불편한 경험이 되기 십상이다. 

소설의 무대인 서영동은 이름과 정황상 서울 영등포 어름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그곳이 반드시 영등포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울의 중심부나 강남이 아닌, 부도심 어느 곳이든 서영동과 비슷한 풍경과 문제를 지니고 있을 테니까. 서영동은 그만큼 친숙하고 그래서 보편성을 지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시티픽션> 수록작을 손본 연작 첫 편 ‘봄날아빠(새싹멤버)’는 “까놓고 말해봅시다”라는 사뭇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영동 주민들의 온라인 친목 카페에 ‘봄날아빠’라는 아이디로 올라온 글의 도입부인데, 요지는 서울의 다른 지역 아파트 값이 다 올랐는데 서영동만 제자리걸음이라는 것. 이 아이디의 주인은 지역 중개업소의 가격 후려치기를 문제삼고, 서영동 학군이 강남에 못지않다고 주장하며, 아파트 방향으로 지하철역 출구를 내자고 주민들을 선동한다. 도입부 문장의 어조는 이 필자의 노골적인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그 욕망이 사실은 이 필자만의 것이 아니라 카페 회원인 다른 주민들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것임을 소설을 마저 읽으면 알게 된다.

연작의 무녀리라 할 이 작품의 원제는 ‘봄날아빠’라는 아이디 주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담았고, 그 후보로 꼽을 만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연작의 나머지 작품들을 이룬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 모두가 ‘봄날아빠’와 같은 욕망의 소유자라는 사실에 대한 방증일 수 있다. 가령 그중 한 인물의, “분명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인데 내 것이었던 것 같고, 빼앗긴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박탈감을 보라. 아파트로 표상되는 욕망에 내남없이 휘둘리고, 욕망의 경주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서영동 주민이라 할 수 있을 테다.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린 연작소설 &lt;서영동 이야기&gt;의 작가 조남주. 사진은 지난 2018년 소설집 &lt;그녀 이름은&gt;을 내고 &lt;한겨레&gt;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린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의 작가 조남주. 사진은 지난 2018년 소설집 <그녀 이름은>을 내고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희진은 1503호 매수 6개월 만에 동아부동산 사장님의 중개로 6억 전세를 끼고 8억에 42평형을 추가 매수했다. 그러느라 2억을 더 대출받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2년 후, 임차인을 내보내고 희진의 가족이 입주할 때는 42평형의 시세가 11억이 되어 있었다. 희진은 1503호를 9억 5천에 팔았다. 전세 보증금을 내주고 대출금을 갚고도 제법 목돈을 손에 쥐었다.”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의 주인공 희진의 사례다. 희진이 닳고 닳은 투기꾼인가 하면, 전혀 아니올시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마흔다섯 살 희진 부부의 시작은 보증금 7천만원짜리 다세대주택. 그나마 3천만원은 대출이었다. 그런 희진 부부가 부동산 중개인의 권유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전세금과 대출을 끼고 아파트 한 채를 더 사는 식으로 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십억 대의 아파트와 현금 자산을 손에 쥐게 된 것. 그런 희진의 눈에 “자신의 월급이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선량하고 교양 있는 시민조차 투기꾼으로 변모시키는 공화국의 민낯이 이러하다. 

‘봄날아빠’의 정체가 다름 아닌 아파트 입주자 대표 안승복임은 머지않아 드러나는데, 그는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투기에 가까운 횟수와 방식으로 부동산을 끊임없이 사고팔”아 “서영동에 45평과 34평 아파트 각각 한 채와 디지털단지 인근에 일곱 가구가 입주해 있는 원룸 건물 하나를 소유하”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스스로는 피땀 흘려 일군 자산이라 믿기에 그것을 지키고 늘리고자 물불을 안 가리고 뛰어다닌다. ‘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는 그의 딸 보미가 비판적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 자신 아버지 소유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보미는 “아버지에게 집은 뭘까. 아파트는 뭘까”라는 질문을 곱씹는데, 보미와 비슷하게 부동산 공화국의 그늘을 주시하는 시선들이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다.

“희진의 모든 것, 45년 인생 최고의 성취, 네 식구의 안식처”인 희진의 42평 아파트는 위층과 아래층이 협공해 오는 층간소음 공세로 “끔찍한 악몽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식품회사 공장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딸이 사는 곳 근처 아파트의 경비원이 된 유정 아버지는 참기 힘든 모욕과 부당한 업무 지시에 항의하다가 해고당한다(‘경고맨’). 자신의 학원 이웃 건물에 치매 관련 시설이 들어오는 데에 반대하던 경화는 제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자 곧바로 생각을 바꾼다(‘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학원 보조 강사로 일하며 학원 소파에서 잠을 자는 아영은 ‘2030 영끌족, 수도권 아파트 매수세 심상찮아’라는 기사를 보며 분노 이전의 허탈감에 사로잡힌다(‘이상한 나라의 엘리’).

작가 조남주는 “이 소설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작가가 느낀 괴로움과 부끄러움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옮겨 온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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