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수 원장이 인터뷰 뒤 보훈교육연구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동안 보훈 연구 결과는 주로 전문가들 책상 서랍에만 있었어요. 보훈 연구 주제도 보훈 대상자 처우 개선에 치중했죠. 국민들이 보훈에 대해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거나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데는 이런 점도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보훈 연구도 시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 총서를 기획했죠.”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이 2020년 2월 취임하고 바로 기획해 지금껏 14권을 낸 ‘보훈문화총서’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연구원은 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기관으로 직원 35명이 보훈 교육과 연구 업무를 맡고 있다.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6년 기독교계 재단인 강남대에서 해직당하기도 했던 이 원장은 10년 전부터 애초 전공인 비교종교학 대신 평화학 연구에 힘을 쏟아왔다. 강남대 복직 2년 뒤인 2012년 정규직 교수를 포기하고 비정규직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자리를 옮겨 ‘평화 인문학’이라는 학문 정립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 영화동 연구원 사무실에서 이 원장을 만났다.
총서에는 의료·복지 등 낯익은 보훈 주제도 있지만 평화나 국제관계 관점에서 보훈을 짚거나 북한이나 주변국들의 보훈 정책을 살핀 내용도 담겼다. ‘아시아의 보훈과 민주주의’ 편을 보면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1992년 헌법을 개정해 보훈 대상자 규정을 ‘혁명에 공이 있는’에서 ‘국가에 공이 있는’으로 바꿨고, 또 일본이 연합군의 자국 점령 상태가 사실상 종결된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직후 첫 행사로 ‘전몰자 추도식’을 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북한에서는 보훈을 담당하는 별도 국가기구가 없고 보훈을 사회보장의 틀 안에서 관리한다는 점도 알려준다.
그는 한국 보훈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훈의 세 축인 독립과 호국(국가 수호), 민주가 조화롭게 연결되고 보완하는 ‘삼각뿔 보훈’을 제시했다. “우리는 독립과 호국, 민주를 각기 따로 봅니다. 보훈교육 때도 독립운동가, 6·25 참전용사, 5·18 유공자를 나눠 제각각 설명하죠. 하지만 셋 사이에는 충돌이 있어요. 일본 강점기에 독립군을 잡던 백선엽은 호국을 이유로 서훈을 받았지만,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북한 초기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했잖아요? 국가 보훈의 목표인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보훈도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통합의 논리로 가야죠.”
그는 총서의 글에서 “김원봉 이상으로 조국 독립에 공헌한 사람을 찾기 힘들지만 ‘유공자는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는 보훈처 내부 규정에 따라 서훈을 받지 못했다”며 이는 “한국적 보훈의 세 이념 중 호국이 독립보다 더 비중 있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우리는 지나치게 전쟁 즉, 호국 중심으로 보훈을 이해하고 있어요. 호국의 폭을 넓혀서 친일파 백선엽을 서훈한 것처럼 김원봉도 광복군 부사령·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 공적을 고려해 서훈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당장 서훈이 어렵다면 ‘독립공로자’라는 임시 명분으로라도 공적을 치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독립·호국·민주가 하나로 연결되는 한국 보훈의 첫 사례가 될 수도 있다고 봤다. 보훈당국은 독립운동가 선정 기점을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 규정하고 있지만 1894~95년 봉기한 동학 농민군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현재 서훈 대상에서 빠져 있다. “동학 농민군을 유공자 지정에서 배제한 논리는 2004년 제정된 동학농민명예회복법과 충돌해요. 이 법은 동학 농민군이 1894년 3월 봉건체제 개혁을 위해 1차 봉기하고 그해 9월 일제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키려고 2차 봉기했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이렇게 동학농민혁명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독립과 호국, 민주를 연결하는 한국적 보훈의 논리를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겁니다.”
취임 2년 만에 ‘보훈문화총서’ 14권
보훈 개념·주제·국제 비교 연구
대상자 처우개선·호국 중심 벗어나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바람직”
‘불교·기독교’ 비교종교학 석·박사
“보훈도 폭력 줄이는 평화학과 상통”
그는 보훈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면서 그 예로 민주유공자를 들었다. “한국에만 있는 민주유공자 지정에는 나라가 민주주의적 통합의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죠.” 그는 “고령화로 보훈 대상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며 “앞으로는 독립과 호국, 민주 외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희생적으로 기여한 이들도 적극적으로 찾아 보훈 대상자로 올리면 좋겠다”고도 했다. 2019년 설 연휴 때 과로로 숨져 그해 8월 국가사회발전 특별공로 순직자로 지정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같은 ‘국가사회 기여자’를 더 많이 발굴해 정신을 선양하자는 것이다.
서강대 화학과를 나온 이 원장은 같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각각 불교와 기독교를 다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두 개나 받았고 이어 불교와 기독교 철학을 비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왜 비교종교학에서 평화학으로 공부 주제를 바꿨냐고 하자 그는 “여러 종교 현상을 보면서 종교의 공통 지향은 평화라고 늘 생각해왔다”고 답했다. “강남대 복직 뒤 동료 교수나 직원들 눈치가 보여 재미도 없고 전망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 마침 서울대에서 평화를 인문학으로 연구한다는 공고가 떠 지원했죠.” 왜 연구원장에 공모했냐는 질문에는 “제가 해온 평화학을 보훈 정책에 적용하면 제대로 된 보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평화학 연구자인 그에게 평화의 정의는 폭력 줄이기 즉, ‘감폭력’이다. “국제사회에서 평화는 기존 폭력을 줄이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폭력이 없는 상태는 평화의 사전적 정의에 불과하죠. 인류에게 그런 세상은 없었어요.” 우리는 감폭력의 길을 가고 있을까? “외형적으로는 감폭력이지만 내적인 폭력은 더 정교해졌죠. 성과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 극도로 피곤하지만 스스로 피해자라는 생각도 못 해요. 구조화된 폭력 피해를 당하면서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죠.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사라진 세상이죠.” 어떻게 해야 할까? “정책 제시 이상으로 교육을 통한 자기 발견이 중요해요. 다 같이 조금씩 가난해지는 삶을 기쁘게 선택하고 자연의 질서에 어울리는 생태적인 삶으로 방향을 튼다면 감폭력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평화의 관점에서 한국 종교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종교인이라면 예배당이나 사적인 공간에서 사회적 폭력을 줄이는 데 희생적으로 공헌해야죠. 종교인이니까 평화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이가 바로 종교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보는 것처럼 종단이나 제도가 중심이 된 종교는 오히려 폭력을 키우잖아요? 종교 조직과 제도가 약속한 것을 바꾸려는 이들을 이단으로 보기 때문이고, 종교의 사물화 현상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