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진 지음 l 달 l 1만4500원 운동회 날이면 ‘열외’를 자처하던 아이가 있었다. 장래희망은 피아니스트. 손이 곧 재산이기에 함부로 들고, 메달리고, 뜀박질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마흔 중반에 접어든 그는 건반을 내리치는 대신 바벨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섬섬옥수에 사정없이 ‘탄마’(탄산마그네슘,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묻히는 흰 가루)를 바른 채로. <뭐든지 가뿐하게 드는 여자>는 그 거대한 인생의 전환을 ‘가뿐하지만 묵직하게’ 풀어낸 책이다. 지은이 정연진은 독일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끝내 피아노의 길을 접고 만다. 대신 동시통역사라는 새 길을 간다. 여기 동행한 것이 바로 ‘역도’다. 한풀이 하듯 클라이밍, 크로스핏, 철인 3종 경기까지 섭렵한 지은이는 본능적으로 역도에 스며든다. “카랑카랑한 쇳소리,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후끈 파고들었던 쇠와 고무와 나무 냄새 (…) 앞으로 이 장소에 아주 오래 머무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동시통역. 두뇌의 긴장을 푸는 데는 “뭔가 묵직한 게” 필요하다. 퇴근 뒤 곧장 체육관으로 간다. “클린으로 어깨에 올린 바벨을 깨끗하게 쭉 뻗는다. 쩍(zerk, 어깨에 놓인 바벨을 머리 위로 드는 동작)! 성공! (…) 오늘 실수했던 일을 자책하며 바벨 한 번 패대기.” 자신의 힘을 가늠하고, 스스로 몇 ㎏을 들지 정하고, 그 무게를 들어올린다. 최대한 애써보되, 안 되면 깨끗하게 “손절”하고 다음 시도를 준비한다. 지은이가 바벨을 대하는 원칙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바벨처럼 인생도 가뿐하게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오른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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