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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가 삶이고 삶이 시였던 시인

등록 2022-02-04 04:59수정 2022-02-05 22:31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김응교 지음 l 삼인 l 2만9800원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인이 더 많다’는 우스개마저 쓴맛을 잃은 마당에, 2021년 한해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리던 열기는 분명 놀라운 현상이었다. 그가 남긴 문학적 업적이 그만큼 대단해서일 터이나, 그의 시들이 미학적 성취에만 머물렀어도 그랬을지 의문이다. 김수영의 시와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 김수영의 시에는 김수영의 피가 돈다. 그것이 김수영의 시가 현재성을 띠며 부단히 소환되는 이유 아닐까.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은 자서전이 아니라 평전이다. 김수영이 남긴 시 120여편 가운데 초기 작품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 작품까지 72편을 골라 풀이했다는 면에서 문학 평론집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김수영의 생애를 철저히 그의 시편을 통해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고는, ‘시로 쓴 자서전’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 책만의 고유한 구성 형식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지만, 그 대상이 김수영이 아닌 여느 시인이었더라도 그랬을 거라 보기는 어렵다. 시와 삶이 하나라면 시를 쓰는 것이 자서전을 쓰는 거와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지은이는 책을 총 5부의 연대기로 구성하고, 매 시기 김수영 시들의 특성에 인상 깊은 이름을 붙였다. 1945년 광복~1950년 한국전쟁 직전=기계시, 한국전쟁 발발 직후~1954년=곤충시, 1955년~1960년 4·19혁명 직전=식물시, 4·19 직후~1961년 5·16쿠데타 직전=혁명시, 5·16 직후~1968년 사망 전=‘온몸’ 시학 등이다. 그러나 김수영처럼 격변과 격동의 근·현대사를 산 시인 묵객은 많았어도 김수영처럼 살고 쓴 이는 없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 1945년)고 선언한 뒤부터 현실을 직시하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혹했다. 시기별 변주의 알속은 일관성이었다.

김수영의 모든 시에는 개인사와 시대적 배경이 밀고 썬다. 그의 시가 여태 현재에 맞게 재해석되는 것도 시대의 들숨과 날숨이 시 속을 쉼 없이 드나들어서였을 터이다. 지은이가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긍지의 날’, 1953년)에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끌어오는 것이 전혀 이물스럽지 않을 만큼. ‘사랑의 변주곡’(1968년)을 “아들 세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싶어” 했던 시인이 시를 통해 미래 세대에게 “혁명은 사랑의 씨앗에서 움트는 끝없는 결실”이라고 말을 거는 것으로 읽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가 불모화된 오늘이 왜 청년들에게 미래가 없는 시간인지, 왜 김수영의 소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지를 시적으로 역설하는 것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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