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고재종 지음 l 문학들 l 2만5000원 현대시와 선문답의 대화. 고재종 시인이 산문집 <시를 읊자 미소 짓다>를 펴냈다. “수백 권 넘는 불교 경전과 선어록을 헤집으면서” 만난 두 세계의 접점이다. 불교가 한국시에 끼친 영향이나 현대시가 띠는 선적 경향에 대한 논의는 이어져 왔다. 하지만 언어를 떠난 경지인 이언절려(離言絶慮)의 선 세계와 언어적 직관 최전선에 있는 시가 얼마나 감미롭게 어우러지는지 음미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책엔 그런 글이 52편 실렸다. 선은 언어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불립문자와 언어도단이면서, 동시에 언어로 기록되고 주고받는 대화(선문답)이기도 하다. “일상 속 사물과 존재를 치켜들어 직관과 통찰, 동문서답과 전복, 격외와 낯섦, 난센스와 촌철살인 등으로” 본질에 직진하는 선은 시인에게 “종교도 철학도 아니고 하나의 정신문화”로 다가왔다. 각 장이 일관된 형식으로 쓰였다. 선종의 화두를 받아들이기 쉽도록 일상 경험과 단상이 먼저 글을 연다. 그다음, 화두를 자세히 소개하고, 이 화두와 교감이 가능하다고 본 시가 선적 관점에서 해석된다. 지은이가 가장 좋아한다는 화두. “어떤 스님이 대룡 화상에게 질문했다. ‘색신(色身)은 부서지고 파괴되는데, 견고한 법신(法身)은 무엇입니까?’ 대룡 화상이 대답했다.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골짝물은 쪽빛처럼 맑다.’”(<벽암록> 제82칙) 형체가 있는 것은 부서지기 마련인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꽃과 물이다. “색신과 법신이라는 차별 경계에서 떨어져 (…) 삼라만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바로 진리라는 대답.

고재종 시인. 문학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