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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현대시와 선문답의 52가지 대화

등록 2022-02-25 04:59수정 2022-02-25 12:11

[한겨레BOOK]

시를 읊자 미소 짓다
고재종 지음 l 문학들 l 2만5000원

현대시와 선문답의 대화. 고재종 시인이 산문집 <시를 읊자 미소 짓다>를 펴냈다. “수백 권 넘는 불교 경전과 선어록을 헤집으면서” 만난 두 세계의 접점이다.

불교가 한국시에 끼친 영향이나 현대시가 띠는 선적 경향에 대한 논의는 이어져 왔다. 하지만 언어를 떠난 경지인 이언절려(離言絶慮)의 선 세계와 언어적 직관 최전선에 있는 시가 얼마나 감미롭게 어우러지는지 음미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책엔 그런 글이 52편 실렸다.

선은 언어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불립문자와 언어도단이면서, 동시에 언어로 기록되고 주고받는 대화(선문답)이기도 하다. “일상 속 사물과 존재를 치켜들어 직관과 통찰, 동문서답과 전복, 격외와 낯섦, 난센스와 촌철살인 등으로” 본질에 직진하는 선은 시인에게 “종교도 철학도 아니고 하나의 정신문화”로 다가왔다.

각 장이 일관된 형식으로 쓰였다. 선종의 화두를 받아들이기 쉽도록 일상 경험과 단상이 먼저 글을 연다. 그다음, 화두를 자세히 소개하고, 이 화두와 교감이 가능하다고 본 시가 선적 관점에서 해석된다.

지은이가 가장 좋아한다는 화두. “어떤 스님이 대룡 화상에게 질문했다. ‘색신(色身)은 부서지고 파괴되는데, 견고한 법신(法身)은 무엇입니까?’ 대룡 화상이 대답했다. ‘산에 핀 꽃은 비단결 같고, 골짝물은 쪽빛처럼 맑다.’”(<벽암록> 제82칙) 형체가 있는 것은 부서지기 마련인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꽃과 물이다. “색신과 법신이라는 차별 경계에서 떨어져 (…) 삼라만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바로 진리라는 대답.

고재종 시인. 문학들 제공
고재종 시인. 문학들 제공

함께 읽는 시는 김행숙의 ‘따뜻한 마음’이다. “(…) 삶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사막에/ 가득히/ 빛// 수수께끼의 형상으로/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 어둠을 끝까지 끌어당기며/ 서 있습니다”.

메마른 마음의 사막에 어찌 빛이 가득하다고 할까. “중생이 보살이고 고뇌가 깨달음”이라는 선의 눈으로 읽으면 “사막이 곧 빛이다”. ‘수수께끼’ 같지만, 바로 그 불가사의 때문에 ‘포옹’이 끌러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걸 알게 된다. “포옹의 기분을 수수께끼 풀 듯 푼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포옹하는 ‘따뜻한 마음’은 언어 너머의 신비 속에서, 다만 ‘빛에 싸여’서 “어떤 어둠도 끝까지 끌어당겨 그 속에 녹여버리”고 만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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