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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설 천국, ‘노벨라 파라디소’를 찾아서

등록 2022-03-04 04:59수정 2022-03-04 09:08

작가의 흔적과 작품무대 찾는
함정임 문학현장 답사기

“소설이 있는 곳은 어디든 천국”
소설과 함께하는 여행 제안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무대인 쿠바의 작은 어촌 코히마르의 화방 벽에 헤밍웨이와 노인, 청새치가 그림과 설치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함정임 제공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무대인 쿠바의 작은 어촌 코히마르의 화방 벽에 헤밍웨이와 노인, 청새치가 그림과 설치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함정임 제공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l 열림원 l 1만7000원

여행과 소설은 닮았다.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경험이라는 점에서다. 기지(旣知)의 편안함 대신 미지의 불안한 가능성에 기꺼이 자신을 맡기려는 씩씩한 영혼들은 여행을 떠나고 소설을 읽는다. 떠나온 여행지와 펼쳐든 소설책에서 낯선 풍광과 새로운 인물을 접하는 일은 똑같이 설레면서도 뿌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래서 여행은 소설이고 소설은 여행이다.

소설가 함정임의 새 책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은 작가의 흔적과 작품 현장을 답사한 문학 기행 에세이다. 지은이의 전공인 프랑스와 프랑스 소설을 중심으로 답사 대상을 골랐다. 지역으로는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과 이탈리아, 터키, 러시아, 미국, 일본에다 광주와 부산, 서울 등에 이르고, 작가로는 보들레르, 플로베르, 프루스트, 카뮈, 모디아노, 바르트, 헤밍웨이, 베냐민, 토마스 만, 도스토옙스키에 김채원, 한강, 박솔뫼, 김엄지 등이 포함되었다. 그는 보들레르의 도시 파리를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가리켜 “일종의 병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다”고 쓰는데, 그것이 병이라면 사뭇 부러운 병이라 하겠다.

“하루하루 소설을 쓰고 소설을 읽는 행위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구, 모험이다. 미지의 세계는 ‘기억’에, 모험은 ‘여행’에 관계된다. 세상 어떤 소설도 이 두 가지, 기억과 여행을 근간으로 삼지 않은 것은 없다.”

지은이가 이런 통찰과 함께 소개하는 이들은 파트릭 모디아노와 베(W.) 게(G.) 제발트. 각각 1945년생 프랑스 작가와 1944년생 독일 작가인 둘은 “기억과 여행을 소설로 집요하게 탐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모디아노가 추리기법을 즐겨 구사하고 제발트는 문헌 답사 방식을 선호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 모두 기억과 여행의 모티프를 천착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2차대전 종전 무렵에 태어났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의 소설은 “점령과 전쟁이라는 부조리한 역사적 사실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끈질기게 개입하고 작용하는지 보여준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모디아노는 201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그것이 결국 노벨상을 받지 못한 그의 선배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뒤늦은 평가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흥미롭다. “회상으로서의 소설 또는 기억으로서의 소설에 대한 공증”이라는 점에서다.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무대인 파리 남서쪽 마을은 원래 이름이 일리에였지만 지금은 소설 속 이름 콩브레와 합쳐진 ‘일리에콩브레’를 공식 행정명으로 쓰고 있다. “현실이 수많은 소설을 낳지만, 때로는 소설이 현실을 보완하며 풍요롭게 이끌어가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성당과 그 주변 마을 집들의 “양털 같은 회색 지붕들”은 100년 전 소설에 묘사된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지은이는 보고한다. “마치 펜 끝에 카메라를 장착한 듯, 의식의 촉수에서 그 카메라를 작동하듯 단어와 단어가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문장과 단락에서 장면과 세상이 마법처럼 창출된다.”

소설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의 무대인 일리에콩브레에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 박물관 2층 레오니 아주머니 방에 재현된 소설 속 홍차와 마들렌. 함정임 제공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무대인 일리에콩브레에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 박물관 2층 레오니 아주머니 방에 재현된 소설 속 홍차와 마들렌. 함정임 제공

플로베르 소설 <마담 보바리>의 무대인 용빌 라베이의 모델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 리(Ry). 불과 30~40호에 지나지 않는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지은이는 소설 주인공 엠마 보바리를 단박에 이해하게 된다.

“태양만이 지붕과 길 위를 내리쬘 뿐 인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면보다 작은 리 수준의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고적함에 직면하자 하루하루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던,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죽음 같은 무료함을 느끼던 엠마 보바리가 떠올랐다.”

이렇게 문학 현장 답사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지은이는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새로운 인생>의 주인공을 좇아 버스를 타고 터키 곳곳을 떠돌아 보고, 헤밍웨이가 “파리, 내 청춘의 도시, 우리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다”고 회고한 파리5구 팡테옹 언덕의 신혼집에서 문학의 초심을 돌이켜 보며, 나치에 쫓겨 피레네 산맥을 넘은 베냐민이 마지막 숨을 놓은 스페인의 작은 포구 마을 포르부에 만들어진 그의 가짜 무덤에서 실제와 허구의 관계를 곱씹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가 파리를 떠나 정착해 마지막까지 살았던 남프랑스 뤼베롱의 산간 고원 마을 루르마랭 전경. 함정임 제공
알베르 카뮈가 파리를 떠나 정착해 마지막까지 살았던 남프랑스 뤼베롱의 산간 고원 마을 루르마랭 전경. 함정임 제공

작가가 글을 쓴 장소를 답사하면서 지은이는 “작가의 기질과 이력, 특히 작가가 종사한 업종과 체류한 공간에 따라 소설의 내용과 형식, 서사의 호흡과 규모, 문체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도스토옙스키와 고골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름의 백야 기간을 제외하고는 춥고 음습한 밤이 지속되는 이 운하도시의 기후와 계절적 요인이 문장의 형성과 서사의 흐름에 긴밀하게 작용했음을” 파악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꿈이자 현실이고, 현실이자 인생이었던 소설들. 옛날 나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소설이든, 막 작가의 손을 떠나 아직 인쇄소의 잉크 냄새가 나는 소설이든, 내게는 모두 노벨라 파라디소, 소설로 만나는 천국이다.”

지은이는 쓰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바지런히 읽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어서, 그에게는 소설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천국이 된다. 소설을 사랑하고 여행을 즐기는 그는 그래서 소설과 함께하는 여행을 권한다. 여행과 소설이 공존하는, 이중의 천국이다. “나는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런던이나 뉴욕, 더블린이나 파리에 갈 때, 그곳을 무대로 쓴 소설 한 권씩을 품고 가라고 권유하고는 한다.”

벌써 2년 남짓 이어진 코로나 대유행으로 외국 여행이 여의치 않은 시절 , 여행과 소설의 천국으로 안내하는 함정임의 책을 읽으며 독자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맛볼 수도 있겠다 .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코로나 이후의 일상을 앞두고 지은이처럼 소설과 함께하는 여행을 미리 준비해 보아도 좋겠다 .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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