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리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 4000원 ‘엘리제를 위하여’로 문을 여는 조우리(사진) 연작소설 <이어달리기>에는 모두 7편의 단편이 담겼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마무리하고 있는 ‘성희’는 혈연은 아니지만 이모와 조카로 관계 맺은 일곱 명의 여성을 각각의 소설에서 호명한다. “사랑하는 나의 조카, ○○에게”라고 시작되는 편지가 그들에게 닿으며 ‘마지막 미션’이 주어지는데, 성희 이모가 그들 각자의 성장기에 맛보게 해주었던 것처럼, 삶을 다시 환기시키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미션을 수행하라는 성희의 편지를 받은 혜주(‘엘리제를 위하여’), 수영(‘고요한 생활’), 지애(‘둘 둘 셋’), 예리(‘쿠키가 두 개일 때’), 태리(‘구르는 재주’), 소정(‘파도가 온다’), 아름(‘배턴 터치’)은 각자의 임무를 피하지 않는다. ‘파도가 온다’에서 방송사 피디인 소정이 미션을 받고 하와이까지 동행한 열여섯 살의 서퍼 지민이 알려주듯 “저마다 각자의 파도를 타고 있는” 조카들의 오늘이 소설 속에 담겼다. 대개 ‘미션을 성공하면 유산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걸렸지만 일곱 명의 여성 누구도 성희 이모의 유산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과정에 뛰어드는데, ‘둘 둘 셋’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지애의 말이 이들의 다정한 관계를 이해하게 해준다. “성희 이모에게서 받은 게 정말 많아요. 어린 시절에 만난 어떤 어른이 보여준 태도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레즈비언인 성희는 다양한 인연으로 조카들을 만나오며 어린이였던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도와준다. 조카들이 처한 현실엔 아슬아슬한 긴장이 늘 존재했지만 성희 이모와 함께하던 순간이나, 성희 이모가 던진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선 순순한 마음들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자연스레 선선한 해방감에 도달하게 된다. 여성, 퀴어,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글을 써온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만의 파도에 올라타, 제 삶에서 배턴을 쥐고 달려나가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상대에 대한 배려와 헤아림, 다정하고 긍정적인 시선과 말이 주는 힘을 바탕으로 소설을 끌고 나간다. 보금자리를 찾은 유기 거북, 카페에서 ‘제 몫의 잔을 들고 자신만을 위한 자리에 앉아 있는’ 어린이 손님, 하와이 바다에서 파도를 힘껏 타고 있는 청소년 서퍼에게 눈길이 닿게 될 때면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면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는 지은이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사진 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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