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양현·최영우 지음 l 효형출판 l 1만4000원 1923년 전라북도 남원 삭녕 최씨 집성촌에서 4남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최영우는 2차 대전의 전선이 확대되던 1942년 일본군 군속 채용에 응시한다. 그가 늘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2년 동안 돈도 착실히 모을 수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집집마다 징병이나 징용을 보내야 한다는 압력 속에서 작은아버지의 권유를 떨치기 어려웠다. “형님이 우리 집안 기둥이신데, 조선에서 안전하게 계셔야지. (…) 완주(동생)도 아직은 어려. 그래, 그러면 내가 가야지. 내가 가는 게 맞겠지. 그래야지. 내가 가야겠지.” 밤마다 잠 못 이뤄 번민하며 그는 이렇게 일기에 썼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2002년 세상을 떠난 최영우의 육필원고를 그의 손자 최양현이 열어보고, 그가 일했던 일본군 ‘포로감시원’의 역사를 샅샅이 뒤져가며 복기한 한 개인의 역사이자, 시대의 기록이다. 부산에서 두달간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배에 오른 그는 태평양 망망대해를 건너 인도네시아 자바섬 끝의 말랑 지역 포로수용소에 도착한다. 포로를 관리하는 그의 일은 징병이나 징용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 전세가 기울수록 그가 처한 상황도 열악해지고 마침내 패전 뒤에는 그 자신이 일본군 전범 포로가 되면서 2년 가까운 수형생활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포로들을 보며 느끼는 착잡한 연민과 일본군에게 당하는 모욕, 전범으로 재판을 받으며 겪는 공포와 좌절을 스무살 청년은 묵묵히 적어 내려갔다. 승자와 패자의 역사를 넘어 전쟁이 한 개인에게 남길 수밖에 없는 상흔이 손자의 헌신적 노력을 통해 생생한 숨결로 살아났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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