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감정론 연구
한석환 지음 l 성균관대출판부 l 2만8000원 서양 고대철학 전문가인 한석환 숭실대 명예교수가 쓴 <감정의 귀환>은 ‘감정’을 복권시켜 제자리를 찾아주려는 학문적 시도다. 부제(‘아리스토텔레스 감정론 연구’)가 알려주는 대로 지은이는 감정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꼼꼼히 살핌으로써 감정 복권 작업을 시도한다. 서양 철학에서 감정은 대체로 이성보다 급이 떨어지는 정신 능력으로 취급받아 왔다. 감정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이 서양 철학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이성 우위의 사유를 정착시킨 사람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항상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평온한 성품의 소유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성 중심주의에서 비켜나 감정이 지닌 긍정적인 힘에 주목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감정 탐구가 집중된 곳은 영혼론, 윤리학, 수사학, 비극론(시학)이다. <감정의 귀환>은 이 네 영역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감정론이 거쳐 간 궤적을 세밀하게 탐사한다. 이를테면 ‘비극론’에서는 공포와 연민이라는 비극적 감정을 깊이 살피고 ‘윤리학’에서는 ‘좋은 삶’(에우다이모니아)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감정을 추적한다. 이 책은 이런 탐사 과정을 거쳐 이성에 억눌렸던 감정에 제 몫의 권리를 돌려준다. 감정은 합리적 판단의 방해물이 아니고 촉진자다. 특히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는 감정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실천적 지혜를 행동으로 바꿔주는 동력이 바로 감정이다. 의로운 분노가 없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물론 모든 감정이 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를 좋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감정은 오랜 기간에 걸친 마음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경쟁심과 질투심을 떠올려보자. 경쟁심이나 질투심이나 ‘사람들이 높이 떠받드는 좋은 것’을 지향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똑같은 마음이 유덕한 사람에게는 경쟁심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악덕한 사람에게는 질투심으로 나타난다. 경쟁심은 나를 높여 지향 대상에 다가가려고 하는 마음이지만 질투심은 다른 사람을 해쳐 지향 대상을 얻지 못하도록 하려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담금질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감정이나 악덕한 사람의 감정은 유익은커녕 해악을 끼치기까지 한다.” 긴 시간 절차탁마의 과정을 통해 제2의 본성으로 몸에 밴 감정이야말로 윤리적인 삶, 좋은 삶의 토대인 셈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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