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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안에 반역자가 있다!

등록 2022-03-25 04:59수정 2022-03-25 09:54

[한겨레BOOK]
힐러리 클린턴 소설 ‘…오브 테러’
추리 작가 루이즈 페니와 공저
미국 안팎 테러 위협에 맞서는
50대 여성 국무장관 활약 그려

국제정치 스릴러 <스테이트 오브 테러>를 함께 쓴 미국 정치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오른쪽)과 캐나다 추리 작가 루이즈 페니. Author photograph (Louise Penny) by DoMinique Lafond, (Hillary Rodham Clinton) by Deborah Feingold
국제정치 스릴러 <스테이트 오브 테러>를 함께 쓴 미국 정치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오른쪽)과 캐나다 추리 작가 루이즈 페니. Author photograph (Louise Penny) by DoMinique Lafond, (Hillary Rodham Clinton) by Deborah Feingold

스테이트 오브 테러
힐러리 로댐 클린턴·루이즈 페니 지음, 김승욱 옮김 l 열린책들 l 1만7800원

미국 정치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캐나다의 추리 작가 루이즈 페니와 함께 써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소설 <스테이트 오브 테러>가 번역 출간되었다. 힐러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이자 그 자신 국무장관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유력 정치인이기도 한데, 이 소설 <스테이트 오브 테러>에서 그런 자신의 경력을 충분히 살렸다. 루이즈 페니는 캐나다의 작은 마을 스리 파인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추리 소설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 이번 소설 말미에도 가마슈 경감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스테이트 오브 테러>는 50대 후반의 여성 국무장관 엘런 애덤스가 미국 안팎의 테러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은 국무장관에 갓 부임한 엘런이 서울에서 외교적 조찬을 주재하고 지역 안보 관련 회담에 참석한 뒤 비무장지대를 방문하는 등 한국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거의 범죄 수준으로 무능했던 전임 행정부가 망친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건”하는 것을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가 남긴 부정적 유산을 척결하는 것이 엘런의 임무이자 이 소설의 주제로도 연결된다.

주인공 엘런에 힐러리 클린턴의 모습이 짙게 투영되었다면, 전임 대통령 에릭 던과 러시아 대통령 막심 이바노프는 각각 도널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을 강력하게 연상시킨다. “거대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덩치가 크고 “짜릿한 흥분을 약속하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무섭고 위험한 사람” 에릭 던, 그리고 덩치는 작지만 “존재감은 강렬”해서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에 방아쇠가 걸려 있는 폭탄과 나란히 서 있는 느낌”을 주는 막심 이바노프의 묘사를 두 실존인물과 비교해 가며 읽는 일은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온 엘런을 기다리는 것은 런던과 파리, 프랑크푸르트에서 연이어 발생한 버스 폭탄 테러. 각각 수십명씩의 사상자를 낳은 이 잔인한 범죄가 유럽의 일로 그치지 않고 미국 본토 역시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신임 여성 국무장관을 혹독한 시험대에 들게 한다. 언론과 행정부 내의 동료들은 물론 그를 임명한 더글러스 윌리엄스 대통령조차 엘런의 능력을 의심하고 차라리 그의 실패를 기대하는 불리한 상황에서 그는 고독하게 위기에 맞서고 용감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성공한 중년 여성이 하찮은 남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여자들은 위기 대처에 뛰어난 편인데, 엘런도 그런 사람이었다.”

두 여성 작가가 함께 쓴 이 소설은 여성의 능력과 여성들 사이의 우애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묘사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엘런의 평생 친구이자 지금은 그의 고문으로 일하는 벳시 제임슨, 엘런의 딸 캐서린 애덤스와 그의 학교 친구인 아나히타 다히르, 그리고 테러를 막기 위한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 대장 등 여성들이 중요한 업무를 맡고 그것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때가 때이니 만큼 엘런은 워싱턴의 집무실 책상에 앉아서 조용하게 업무를 보기보다는 세계 각국을 분주하게 오가며 사태 해결에 진력한다. 소설 첫 장면의 서울과 미국 내의 다른 도시는 물론 프랑크푸르트와 오만, 테헤란, 이슬라마바드, 모스크바 등을 바쁘게 다니며 각국 정상을 만나 협조를 구하고 토론을 벌이며 때로는 협박도 불사한다. 국무장관이라는 자리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엘런의 활약이 워낙 두드러지다 보니 그가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사태의 중심에 있고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느낌조차 주게 된다.

“백악관에 있는 첩자, 반역자에 관한 겁니다.”

유럽을 뒤흔든 연쇄 폭탄 테러에 이어 미국 본토를 향한 더 끔찍한 테러 위협이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오는 가운데 엘런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윌리엄스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악관으로 상징되는 미국 권부의 핵심에까지 테러리스트들과 연계된 세력이 침투해 있다는 놀라운 폭로. 얼핏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런 상황의 배경을 소설 속 한 인물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진짜 미국의 가치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냥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되돌리고 싶어 하는 점잖은 보수주의자들이 아니에요. 극단적인 극우주의자입니다. 파시스트죠. 백인 우월주의자, 민병대. 그들은 미국이 더 이상 미국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자기들의 행동이 불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자기들이 기울어진 배를 바로잡는다는 거예요.”

<스테이트 오브 테러>는 잘 짜인 스릴러다.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위협과 놀라운 음모 그리고 반전, 주요 인물들이 겪는 아슬아슬한 모험과 위기, 여러 장소와 인물 및 상황을 교차시키는 속도감 있는 진행, 마지막 파국을 향한 카운트다운과 그것을 막기 위한 절체절명의 몸부림 등 흥미를 유발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페이지터너의 전형이라 할 법하다. “소설이지만 너무나 시의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말처럼 지금의 미국 및 세계 상황과 관련해 생각해 볼 거리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주인공 엘런의 영웅주의적 활약과 과도한 우연 등은 눈에 거슬린다. 엘런의 적수라 할 인물 역시 “악마 그 자체”, “지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데 진심으로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보다시피 극단적인 설정의 혐의가 보인다.

당면한 테러 위협을 물리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되지만, 그럼에도 모든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결말부에서 강조된다. 사라진 핵물질들, 사린 가스, 탄저균, 바이러스 등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끔찍한 것들이 거기 있었다.” 힐러리가 ‘작가의 말’ 마지막에 쓴 문장이 무겁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이 소설이 소설로만 남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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