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과학·역사 아티스트 톰 비에르클룬드가 재구성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 21세기에 재구성된 네안데르탈인은 애정을 표현하거나 백일몽을 꾸기도 한다.
네안데르탈
멸종과 영원의 대서사시
리베카 랙 사익스 지음, 양병찬 옮김 l 생각의힘 l 3만원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같은 고인류의 이름들은 과거의 원숭이에서 오늘의 나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족보를 떠올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보면 네안데르탈인은 원숭이와 인간을 잇는 다리 중 하나,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견줘 진화가 덜 된 ‘직계 조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껏 쌓이고 쌓인 과학적 사실들은, 인류의 진화가 “‘호미닌’(인류의 조상) 고속도로를 화살처럼 직진하여 우리를 탄생시킨 게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밝혀준다.
영국 출신 고고학자·과학저술가 리베카 랙 사익스가 쓴 <네안데르탈>(2020)은 네안데르탈인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첨단 과학기술에 힘입어 과거의 인식이 뒤엎어지는 등 지은이는 “네안데르탈인 연구는 감당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과제”라고 말한다. 과학기술은 동굴 안에서 불을 피울 때 지붕과 벽이 그을린 층을 나노 수준으로 분석하는 ‘숯검정연대기’ 방법을 통해 구체적인 거주 행태까지 읽어낼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은 지식과 글솜씨, 고민이 어우러져 가장 최근의 성취들까지 종합해낸다.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으로부터 45만~40만년 전 유라시아 대륙을 중심으로 여러 집단을 이루며 살아갔던 인류종이다.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펠트호퍼 동굴에서 현생인류와 비슷하지만 다른 인간의 뼈가 발견되면서 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애초 이들의 이름은 동굴이 위치한 지명 ‘네안데르탈’에서 따왔는데, 상징적이게도 ‘네안데르’란 말은 독일어 노이만(Neumann, ‘새로운 사람’)을 그리스어로 읽은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일반 인식에는 선입견들이 잔뜩 껴 있다. 대체로 네안데르탈인은 빙하기를 배경으로 매머드, 순록, 코뿔소 등과 함께 등장하는, 거칠고 야생적인 털북숭이로 제시되곤 한다. ‘진보된 기술이 없어서 작은 동물들은 사냥하지 못했다’는 등 현생인류가 발달시킨 기술·문화 등과 무관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사실들은 이런 선입견들을 깨뜨린다. 네안데르탈인은 빙하기보다는 간빙기에 더 오래 살았고, 그들의 흔적은 해안에서 산봉우리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동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3디(D) 복원기술은 네안데르탈인이 체계적이고 복잡하고 함축적인 방법으로 돌을 가공하고 사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예컨대 그들은 한 몸돌에서 긴 돌날부터 아주 작은 도구까지 효율적으로 떼어낼 줄 알았다.
이들은 돌뿐 아니라 목재, 조개 껍데기, 송진, 동물 뼈 등 여러 재료들을 활용하는 복합적인 물질문화를 갖고 있었다. 독일 쇠닝겐에서 발견된 나무 창은 이들의 뛰어난 목공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자작나무 껍질을 가열해 만든 타르로, 석기에 나무 손잡이를 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변화의 주기를 목격하고 이해하는 사회적, 세대 간 학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활동지역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동물들을 사냥했는데, 여기에서도 매우 전문화된 체계가 있었다. 예컨대 이들은 순록 떼가 이동하는 특정 시기와 장소를 노려 이들을 대량으로 사냥한 뒤, 가장 살찐 개체들로부터 골수·지방·내장 등 가장 푸짐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도축해 거주지역으로 운반했다. “이처럼 명백한 선택 패턴은 이기적인 무한경쟁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며 오로지 공동의 목표를 지닌 집단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지은이는 네안데르탈인에게 발견되는 가장 뛰어난 특징으로 ‘연결에 대한 욕망’을 꼽는다. 이들은 사물, 동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된 삶의 편린들을 세분화하는 한편 축적하는 데 능했으며, 그로부터 “타자의 관점에 대한 공감 및 이해와 결합하여 의미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프랑스 남서부 브뤼니켈 마을의 동굴에서 발견된, 기념비적이지만 수수께끼투성이인 네안데르탈인 건축물 유적을 두고, “그들은 어쩌면 돌의 시신을 해체하여 새롭게 재구성했을지 모른다”고 풀이해보기도 한다.
프랑스 브뤼니켈에서 발견된, 17만4천년 전 석순을 이용해 만들어진 불가사의한 구축물.
네안데르탈인이 구사했던 다양한 석질 기술을 보여주는 그림.
최근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는 분야는 유전학이다. 과거 모계 유전만을 봤던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mtDNA) 분석은 네안데르탈인이 ‘유전적으로 고립된 채 지내다가 멸종했다’고만 알려줬으나, ‘핵 디엔에이’(nDNA) 분석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2010년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체에 기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모든 사람들(사하라사막 이남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 제외)에게서 1.8~2.6%의 네안데르탈인 디엔에이(DNA)가 발견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오늘의 과학은 호미닌 사이의 이종교배가 아주 오래된 규범이었으며 “20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아기를 낳은 이후로도 최소 3번, 많게는 6번의 이종교배 시기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디엔에이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갑자기 멸종한 원인과 더불어, 이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섞였는지 등 자세한 내막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겨져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처음부터 백인의 우월성에 대한 과학적 정당화에 매몰되어 있었다.” 책 말미에서 지은이는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을 궁극적인 ‘타자’로만 바라봐 온, 서양의 구조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에 일침을 가한다. 최신의 유전학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무언가 못해서 지구상에서 사라졌겠지’ 따위의 생각에 여전히 그런 인식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지배, 착취, 갈등의 테마들-자연과 투쟁하는 삶, 생각 없는 동물, 감정 없는 사물-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기존의 틀을 버리고, 유사성을 강조하는 ‘관계적 틀’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동물 역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 여겼던 네안데르탈인처럼. 그렇게 보면 인간은 주인 아닌 구성원일 뿐이고, ‘새로운 인간’ 네안데르탈인은 인간과 다르면서도 가까운 친척(kindred·이 책의 원제)일 뿐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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