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김순석(1952~1984)이 남기고 떠난 말에서 ‘주어’를 빼봤습니다. 그 자리에 ‘나는’을 넣어봅니다. 이 문장들의 주어가 당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소아마비를 앓고 교통사고까지 당한 김순석이 살아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는 이동권을 요구하는 항거의 흔적을 이 땅에 깊이 새기고 1984년 9월19일 세상을 버렸습니다.
지난해 12월 ‘한겨레Book’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유언을 만난 세계>(오월의봄)를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서울 마천동 지하 셋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김순석을 또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최정환(1958~1995)을, 이덕인(1967~1995)을, 박흥수(1958~2001)와 정태수(1967~2002)를, 최옥란(1966~2002)을, 박기연(1959~2006)을, 우동민(1968~2011)을, 장애해방열사들의 신산했던 삶을 책을 통해서나마 애써 곰곰이 떠올렸습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모릅니다. 머리로도 몸으로도 온전히 알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기 위해 애쓸 수는 있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공감을 넓힐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귀한 사람이며, 고귀한 생명이고, 세계를 이루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면 비로소 손을 내밀어 연대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은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지성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동권은 생존권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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