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거리] 문턱

등록 2022-04-01 04:59수정 2022-04-01 10:25

“왜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김순석(1952~1984)이 남기고 떠난 말에서 ‘주어’를 빼봤습니다. 그 자리에 ‘나는’을 넣어봅니다. 이 문장들의 주어가 당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소아마비를 앓고 교통사고까지 당한 김순석이 살아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는 이동권을 요구하는 항거의 흔적을 이 땅에 깊이 새기고 1984년 9월19일 세상을 버렸습니다.

지난해 12월 ‘한겨레Book’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유언을 만난 세계>(오월의봄)를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서울 마천동 지하 셋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김순석을 또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최정환(1958~1995)을, 이덕인(1967~1995)을, 박흥수(1958~2001)와 정태수(1967~2002)를, 최옥란(1966~2002)을, 박기연(1959~2006)을, 우동민(1968~2011)을, 장애해방열사들의 신산했던 삶을 책을 통해서나마 애써 곰곰이 떠올렸습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모릅니다. 머리로도 몸으로도 온전히 알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기 위해 애쓸 수는 있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공감을 넓힐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귀한 사람이며, 고귀한 생명이고, 세계를 이루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면 비로소 손을 내밀어 연대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은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지성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동권은 생존권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1.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2.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창고 영화’ 다 털어냈더니…내년 극장가 빈털터리 될 판 3.

‘창고 영화’ 다 털어냈더니…내년 극장가 빈털터리 될 판

‘정년이’ 큰일 했다…여성국극 연일 매진, 신작 제작도 활발 4.

‘정년이’ 큰일 했다…여성국극 연일 매진, 신작 제작도 활발

마산 앞바다에 비친 ‘각자도생 한국’ [.txt] 5.

마산 앞바다에 비친 ‘각자도생 한국’ [.txt]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