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의 문화유전자
이어령 지음 l 파람북 l 1만 8000원 지난 2월 영면에 든 이어령의 마지막 유작이자 ‘한국인 이야기’의 두 번째 책인 <너 누구니>는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다루고 있다. 한국인에겐 너무나 익숙한 젓가락에 대한 세세한 탐구가 흥미를 돋우는데, 젓가락질은 대를 이어 전승되는 ‘문화유전자 밈(meme)’으로 “생물학적 유전자와는 달리 문화적 관습이나 모방을 통해서, 거의 반은 무의식적으로 반은 의도적으로 배워서 몸에 익히는 것”이기에 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가까이 있는 것, 늘 보아온 작은 것 속에 뜻밖에 깊고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나와 함께 사는 이웃이 누구인지, 젓가락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여의봉이 될 수 있다.” “숟가락, 젓가락을 한 벌로 식사하는 한국의 수저 문화”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문화”임을 살피며, 책은 과거의 흔적들과 각 나라의 음식 문화를 아우른다. “액체와 고체, 두 음식을 동시에 포괄하는 식사 도구”인 수저가 “음양의 조화를 제대로 반영시킨 문화” 아래 쓰이고 있음을 깨달으면 수저를 드는 일이 새롭게 느껴질 듯하다. 책은 한자에 토착어가 결합한 ‘젓가락’이란 단어에 담긴 인식을 들여다보고, 모순 속에서 조화를 이룬 젓가락의 형태를 고찰하며, 자르거나 찌르는 게 아닌 “집어 드는” 행위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젓가락을 매개로 거대한 문명을 탐사하면서 너른 시선으로 깊이 있게 바라본 세상의 면면들이 지은이의 차근한 문장을 통해 따스하게 전해져온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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