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에서 60년 이상 포도농사를 지어온 항보 김성순(93·사진) 선생의 시 ‘만다라 손수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여덟 개의 날개 중 하나를 타고/ 내가 아래로 내려가면/ 그대는 반대편에서 위로 올라온다 (중략) 내가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밑으로 내려가니/ 그대도 기쁜 마음으로/ 노래 부르며 솟아오르라.”
최근 생애 첫 시집 <거북이 마침내 하늘을 날다>(시와에세이)를 낸 그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경북 상주의 한 절을 찾아 만다라 손수건을 사서 보니 팔랑개비 8개가 돌고 있더군요. 그걸 보고 썼죠. 내가 기쁜 마음으로 내려갈 테니 너는 기쁘게 솟구치라는 거죠. 옳고 그르다 싸우기만 하면 물레방아는 돌지 못해요. 상부상조하고 협력해 역사를 만들어가야죠.”
해방 후 단정 반대 운동으로 옥고를 겪었고 군사정권에서 농민운동도 치열하게 했던 그는 2006년부터 계속 일기를 써왔다. 이번 시집 수록작도 모두 이 28권 분량 일기에 쓴 글들이다. “날마다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나는 것을 적었죠. 사실 내가 시인이란 생각으로 시집을 낼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내 문집을 만들고 있는 임근수 추풍령중 교장 선생님이 시집을 따로 묶자고 하더군요.”
시집에는 그가 2007년 처음 만난 동학의 가르침과 한평생 농사꾼으로 살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를 반추하는 작품들이 많다.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남긴 유일한 필적인 ‘거북 구(龜)’에 기대 쓴 시 ‘거북이의 노래’에서 그는 “거북이는 말이 없다/ 온몸으로 땅을 안고 산다/ 급할수록 돌아간다/ 날마다 자기를 돌아본다 (중략) 내가 바로 서면 세상이 밝아온다”고 삶을 성찰했다. 몸을 낮추는 삶의 미덕에 대해 푼 시 ‘앵두나무에서 배운다’는 자택에 심은 앵두나무를 들여다 보고 썼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앵두가 보이지 않는다// 몸을 낮추고/ 차라리 앉아서 쳐다보면// 빠알갛게 익은 앵두가/ 온통 이 가지 저 가지에 매달려 있다.”
그는 자신이 시집을 낸 게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곳 대구·경북 지역을 보면 너무 역사의식이 없어요. 동학의 발상지이고 수운 선생이 효수된 곳도 이 지역인데 동학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제 시가 작은 물방울이라도 되어 동심원을 만들면 좋겠어요.” 그는 지난달 말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전국적인 포도농가 모임에 자신의 시집 200권을 보내 일일이 돌렸다고도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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