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는가
사너 블라우 지음, 노태복 옮김 l 더퀘스트 l 1만7000원 숫자는 중요하다. 학생들의 성적·등급, 입시 점수, 직장인들의 고과, 청약가점, 신용점수 등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0.7%포인트 ‘박빙’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한국 사회를 바꿀 것이며, 이보다 앞서 여론조사 결과는 투표에 영향을 줬을 터다. 물가, 금리, 환율, 국민소득, 통화량, 실업률 등 거시경제지표는 경제정책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다. 무표정한 숫자들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인간과 세계를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숫자의 지배는 마땅한가? 최근 물가가 올라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그러나 부유한 이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반면 빈곤층은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숫자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만 하더라도 평균치일 뿐이다. 총생산이 어떻게, 얼마나 분산되어 있느냐는 산술평균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총생산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심각한 불경기를 겪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던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국민소득’을 만들어 측정했다. 1934년 첫 수치가 나왔는데, 1929년에서 1932년 사이에 국민소득은 반토막 난 것으로 나타났다. 마뜩잖아 하던 미국 정부는 전쟁이 터지자 무척 곤란해졌다. 복지보다 무기에 돈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쿠즈네츠의 국민소득은 감소하게 된다. 그래서 만든 게 국내총생산이다. 폭격기도 새로 만들면 경제에 이로운 것으로, 국내총생산은 인식한다. <위험한 숫자들>은 이런 사례를 줄줄이 엮어 보여준다. 숫자들을 무조건 믿지는 말라는 것. 그렇다고 숫자의 유용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숫자는 숫자가 없었더라면 숨어 있었을 패턴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숫자를 대화의 종착지로 삼지 말고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아울러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저자다. 2013년 세계의 이목을 모으며 탄생한 네덜란드 언론사 <드 코레스폰덴트> 소속 기자가 이 책을 썼다. 이 매체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설립된 비영리 언론사인데, 8일 만에 구독회원 1만7500명이 13억원이 넘는 돈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숫자를 우습게 여기는 한국 언론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저자는 이 매체의 수학 전문기자다. 숫자가 얼마나 위험하면 수학 전문기자까지 있겠는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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