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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머무는 ‘계류자’로 우리 곁에 맴도는 귀신들

등록 2022-04-08 04:59수정 2022-04-08 09:31

[한겨레BOOK]
‘21세기 아시아 귀신’ 모습과 의미
경계에 머무는 ‘계류자’ 성격 강해
인간과 교섭하는 방식도 다양해져
‘포스트휴먼’ 담론도 귀신과 연결

망자가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무속신화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한국 영화 <신과 함께>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망자가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무속신화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한국 영화 <신과 함께>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계류자들
요괴에서 좀비, 영혼 체인지, 포스트휴먼까지 아시아 귀신담의 계보
최기숙 지음 l 현실문화 l 1만8000원

죽을 수도 살아갈 수도 없어 이승을 떠도는 존재인 귀신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 등을 타고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고전문학과 한국학, 젠더와 감성 연구를 해온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계류자들>에서 “장르와 매체를 달리하여 리메이크될 뿐 아니라 현대의 새로운 이슈를 품고 창신”하고 있는 ‘21세기 아시아 귀신’들의 모습과 그 의미를 파고들었다. 지은이는 전작 <처녀귀신>(2011)에서 조선시대 문학에 재현된 여성 귀신을 통해 “사회정의를 되묻는 성찰의 매개”로서 귀신 서사를 조명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귀신은 “생전의 인간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삶을 떠안은 연장체이자 그 정치적 부수물”, 한마디로 “산 사람이 감당해야 할 부채”로서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귀신은 생사의 경계를 뚫고 일시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존재로, 대체로 이에 대한 대응은 그를 현실로부터 축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귀신과의 교섭 방식이 긍정과 부정, 양자의 혼성으로 다원화했다.” 웹툰과 만화, 드라마, 영화 등에서 이제 귀신은 공조와 협력, 때로는 로맨스를 나누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교섭하며, 심지어 전문성과 개성을 갖춘 능력자가 되어 인간 세상에 머물기도 한다. 웹툰 <바리공주>에선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귀신들에 공감하여 그들의 해원을 돕는 귀신-인간-신 협력팀이 활약한다.

귀신과는 또다른 인간의 사후적 존재인 좀비가 대거 등장하는 한국 영화 &lt;부산행&gt;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귀신과는 또다른 인간의 사후적 존재인 좀비가 대거 등장하는 한국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특히 지은이는 21세기 아시아 귀신이 “림보와 같은 임계지를 만들거나 일상 안의 경계 지역에 정주하며 지속적으로 현실에 관여하는 계류자”의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어떤 장소나 시간을 유예해주는 장치를 동원해, 망자에게 스스로 삶과 죽음을 정리할 수 있는 주체성을 부여하려는 경향이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와 일본 만화 <우세모노 여관>은 죽음을 완성하는 당사자 입장의 서사다. 웹툰 <조명가게>,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는 이승과 저승의 임계지라 할 수 있는 장소들이 제시된다. 귀신을 공생할 수 있는 영적 파트너라 보고 이들에게 어떤 주체성을 발휘할 시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은, 이들을 “단순한 축출 대상이 아니라, 목소리를 듣고 공감해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는 공동의 부채로 간주”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은이가 지적하는 또 다른 특징은, 21세기 아시아 귀신이 “유사 종으로 증식해 존재론적 의미망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사후적 존재인 귀신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성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강시, 좀비, 흡혈귀 등 더 많은 존재들을 ‘귀신의 증식·확장’이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시간여행 등 에스에프(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비인간’ 존재들과 연관된 ‘포스트휴먼’ 담론 역시 귀신에 대한 사유와 접속한다. 특히 지은이는 “21세기 아시아 귀신은 생사를 사유하는 계류지에 대한 상상을 통해 미래는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재구성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지적한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의 원한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 속 모순을 인식하고 바로잡게 해주듯, 다양하게 증식·확장되고 있는 21세기 아시아 귀신들 역시 “현실을 방관하지 않는 실천적 주체”로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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