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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행동하는 식물이 가르쳐주는 것들

등록 2022-04-15 05:00수정 2022-04-15 10:15

최신 연구로 들여다본 식물 세계
환경 맞서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경쟁하고 협업해온 생존 비결
인류가 위기 헤쳐나갈 교훈
제주 아르테뮤지엄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변신하는 정글의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제주 아르테뮤지엄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변신하는 정글의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식물의 방식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l 이상북스 l 1만6000원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이 지배한다. 먹고 먹히는 법칙이 규율하는 동물의 왕국과 달리, 식물은 평화와 공존의 원리 속에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식물성은 탐욕과 폭력의 거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약하고 처량한 존재로 비치기도 한다. 살아도 살았다 할 수 없는 식물인간에 빗대어 식물정부니 식물대통령이니 하는 조어들도 사용된다. 이런 식물에 대한 관념은 <식물의 방식>을 읽으면서 깨지고 만다. 저자는 식물도 동물 못지않게 활기차고 창의적으로 ‘행동’한다고 강조한다. 역동적으로 경쟁하고 전략적으로 변혁한다. 저자는 식물에 대한 최신 연구들을 종합해 식물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린다.

식물이 빛을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여기서 좀 더 세부로 들어가면 더욱 흥미롭다. 어떤 씨앗들은 땅속에서 빛에 자극받아 싹을 틔우고, 콩 모종의 새잎은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조절하기까지 한다. 식물이 단위 시간당 잎의 단위 표면적이 흡수하는 광자의 수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고 조절한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식물들이 공기 중으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배출해 서로의 존재를 감지한다. 이 화합물은 언어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도 한다. 휘발성 화합물은 방어용 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예컨대 옥수수는 잎이 나비·나방 유충의 공격을 받을 때 포식자인 말벌을 유인하는 화학물질을 방출해서 자신을 보호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세 자매 농법’은 식물들 간의 협업과 연대를 보여준다. 옥수수, 콩, 호박을 함께 심는 방식인데, 옥수수는 콩이 수직으로 자라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고, 콩은 질소를 비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전환하고, 호박은 잡초를 억제하고 토양의 수분을 유지해준다. 지하에서도 세 자매는 서로 지지하고 보완한다. 옥수수는 뿌리를 얕게 내려 토양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그 아래 콩이 곧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호박은 두 자매가 차지하지 않은 곳에 자리 잡는다. 이런 관계는 땅속에 있는 박테리아 등 균군과의 관계까지 어우러져 시너지를 낸다. “자매 식물들이 정착하며 생장하는 타이밍은 안무가 잘 짜인 춤과 같다.”

이 책은 최신 연구에 바탕해 식물의 감춰진 비밀을 차근차근 설명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제는 <식물들로부터 얻은 교훈>(Lessons from plants)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 환경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의사결정, 주변 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유기체들과의 소통을 통한 환경 개선, 식물들 간에 원활하게 이뤄지는 소통과 협력 등 식물의 생명력의 비결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인간 역시 공동체와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유한한 에너지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전략적 결정을 내린다. 이때 식물의 방식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우고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 전제되는 것은 자기 성찰이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필히, 수십억년 동안 삶을 일궈온 식물에게 지혜를 얻어야 한다. “좋은 선택과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는 우리의 능력과 의지는 유전자에게 새겨져 있지 않다. 그것은 학습된 기술이고, 식물은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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