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그날 아침, 기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모니터에 속보 자막이 깔렸습니다.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심드렁하게 종착역에 내렸습니다. 벚꽃은 거의 지고 봄기운은 충만했습니다. 일과를 마친 저녁나절 비극적 상황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일정을 취소하고 밤 기차로 상경하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세계가 뒤집히고 있다는 예감으로 가득한 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조리 알아버렸습니다. 추악한 현실들을 속속들이 체감했습니다. 배신감에 치 떨고 무력감에 몸서리쳤습니다. 우리 사회는 목숨보다 돈 몇 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잘난 척하던 언론은 관성에 묶인 엉터리였습니다. 정치와 행정은 허술하고 파렴치했습니다. 침몰한 배 한 척과 어처구니없는 희생이 이 모든 것을 들춰냈습니다 . 3년 뒤 박근혜 탄핵은 예견된 일입니다. 촛불은 이미 불씨를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거꾸로 돌아갑니다. 촛불이 세운 정부는 촛불을 꺼뜨렸습니다. 대통령을 수사한 검사는 대통령이 됐습니다. 대통령이 된 검사는 탄핵된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참 면목이 없습니다. 늘 죄송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박정희가) 당시 내각을 어떻게 운영했고 청와대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 나라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수감됐다가 사면된 대통령은 미소 지었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걱정돼서 잠이 잘 안 오더라”고도 했답니다. 그에게 권합니다. 잠 못 이루는 시간에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 게 어떻겠냐고요. 특히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오월의봄)를 추천합니다.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하니까요. 예감이 맞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