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이 품고 있는 이야기
전성호 ·이성규·장성탁·김경민·이고운 지음 l 바림 l 1만9800원 <포비든 앨리>는 부산문화방송(MBC)이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책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사진 작가가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시간에 숙성된 삶의 풍경을 소개하는 것으로, 많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고 한국방송대상 등 상복도 많았다. 이 책은 다큐를 만든 5명의 피디가 부산·서울·대전·청주·대구·경주·제주·광주 9개 도시의 골목길 30여곳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다. ‘오래된 동네’라는 뜻은 일제강점기-해방-전쟁-산업화 시대를 숨가쁘게 달려온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음을 말한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몰려온 피란민들이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허겁지겁 세운 가설 주택들에서 비롯됐다. 영도 깡깡이마을은 배에 붙은 녹이나 오래된 페인트를 벗겨내는 망치소리(깡깡이)에서 유래했는데,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커다란 배를 수리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깔리며 단숨에 교통의 요지로 떠오른 대전에는 100년 넘은 철도 관사촌이 몰려 있는 소제동이 있고, 대전역 주변엔 손님들이 약재를 갖다주면 분말이나 환으로 만들어주는 ‘약방앗간’이 몰려 있는 거리가 있다. 동네와 길의 연원을 알아가는 것은 흥미롭지만, 애잔함 역시 지울 수 없다. 이 책에 소개된 동네 대다수가 조만간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없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동네를 기록하는 것, 그것은 애도의 행위이자 개발의 의미를 성찰하는 일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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