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
인쇄업계와 영업자 이야기
오랜 취재 거친 사실적 묘사로
가려진 출판 주역들 조명
인쇄업계와 영업자 이야기
오랜 취재 거친 사실적 묘사로
가려진 출판 주역들 조명

3년간의 인쇄소 취재를 거쳐 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을 낸 일본 작가 안도 유스케. “작가인 내가 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동안 전혀 몰랐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책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라는 형태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죠”라고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스피어 제공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l 북스피어 l 1만6800원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에 따르면 안도 유스케(45)는 기업의 세계와 샐러리맨의 애환을 다루는 소설을 주로 써 왔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그의 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 역시 같은 계열이라 하겠는데, 무대가 인쇄소라는 점이 특별하다.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인 23일이 세계 책의 날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소설 주인공은 도요즈미인쇄주식회사 영업 2부 소속인 세일즈맨 우라모토 마나부. “인쇄 영업을 하시는 분은 무슨 일을 하시는 건가요?”라고 소설 뒷부분에서 작가 이치조 사치코는 묻는데, 그런 의문을 지니는 이가 이치조만은 아닐 것이다. 인쇄 영업자는 출판사로부터 인쇄 수주를 받고 인쇄 현장과 일정을 조정하는가 하면 종이를 수급하고 제작 변경 같은 변수에 대응하는 등의 조율 업무를 맡는다. 도입부에서 취업 준비생들을 위한 회사 설명회에 나온 우라모토는 직속 상관인 나카이도 고지와 약간의 설전을 벌인다. 직업인으로서의 꿈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나카이도가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이라고 맥 빠지는 답을 내놓는 반면 우라모토는 “인쇄가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일)로 인정받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자못 비장하게 대답한 것이다. 인쇄업 자체가 사양 산업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나카이도가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우라모토는 적극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포부를 피력한 셈이다. 세계관의 차이라 할 수도 있을 이런 대립은 소설 전체에 걸쳐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잉크를 배합해서 필요한 색을 만들지. 똑같은 작업의 반복인데 나오는 결과는 매번 다르단 말이야. 종이에 묻혀 보면 더욱 그래. 그날의 습도나 온도, 종이의 상태, 이런저런 조건이 뒤얽혀서 뜻대로 나오질 않아.” 인쇄 현장의 베테랑인 요시자키 지로의 말이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인쇄 작업이 실제로는 매우 까다롭고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 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의 장점은 무엇보다 인쇄 현장과 인쇄업계의 실상을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데에 있다. 작가의 치밀한 취재를 알게 하거니와, 책을 읽고 나면 판권란의 인쇄소 이름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말미에 덧붙인 특별 단편 ‘책은 필수품’을 제하고 모두 5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제목은 곧 우라모토가 제작에 관여하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본문 5개 장은 책 한 권의 탄생 과정을 중심으로 인쇄업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쇄와 인쇄 영업 업무에 대한 우라모토의 자부심과 사명감의 바탕에는 책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책의 탄생에 참여한다는 생각에 때로 무리수를 두기도 하고 자책하는 때도 없지 않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는 좀 더 유능한 인쇄 영업맨으로 발전해 간다. 그런 점에서는 이 책을 일종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일을 그렇게 너무 깔끔하게만 진행하려고 하지 마. 쩔쩔매도 좋으니까 선배나 상사에게 울며불며 매달려도 돼. 책을 기한 내에 완성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상사인 모리 부장이 우라모토의 일 처리와 관련해서 건네는 질책성 조언이다. 평소에도 너무 과감하게 일을 저질러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지적을 받아 온 우라모토가 자신이 수주한 책의 제작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자 낑낑거리던 참이었다. 모리 부장의 조언대로 상사 및 동료들과 문제를 공유하고 힘과 지혜를 합친 결과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가능해지게 된다. 이처럼 이 책 곳곳에는 딱히 인쇄업계만이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황 묘사가 풍부하다.

<책의 엔딩 크레딧> 인쇄감리 작업 장면. 북스피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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