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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후쿠시마 참사 이후 비극의 현장을 기록하다

등록 2022-04-22 04:59수정 2022-04-22 14:26

도쿄신문 기자가 9년간 기록한
원전 재난 복구에 나선 사람들
‘절대 안전’ 믿음 무너진 자리에
피폭되며 사태 수습한 ‘무명인들’
최전선의 사람들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l 푸른숲 l 2만3000원

우리는 벌써 후쿠시마를 잊었다. 11년 전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새 정부 인수위원회가 원전 18기 수명연장을 발표해도 심드렁하다. 반대나 반발 여론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멀리 있어 보이는 생명과 환경보다 코앞에 있는 돈이 더 크고 귀하고 중요하게 여겨질 뿐이니, 탐욕은 공포조차 잠식해가고 있다.

가타야마 나쓰코 기자가 9년간 써내려간 대학 노트 179권을 상상해본다. 너덜너덜한 그 공책들 안에는 9년의 피와 땀, 눈물뿐 아니라 아픔과 분노, 슬픔도 담겨 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 오염수, 노심 용융, 방호 장비, 피폭, 위험, 하청업체 같은 낯선 단어들 사이로 재난, 희생, 고통, 좌절, 집념, 희망, 슬픔 등이 고개를 내밀어 소리치고 신음하는 환청 속에 아득해진다.

가타야마 <도쿄신문> 사회부 기자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래로 후쿠시마에 잠입해 2019년까지 진실을 파헤쳐 갔다. 대학 노트 179권이 그의 분투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한 <최전선의 사람들>은 가타야마가 9년간 후쿠시마에서 만난 ‘최전선의 사람들’을 ‘소문자’로 그린다. 이 책 말미에 해설을 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는 “신문을 비롯해 저널리즘 세계에는 ‘대문자’가 난무한다. (…) 그러나 그 가운데 누락되는 목소리들이 있다. 무명인들의 희로애락이 있다. 거기에는 본래 우리가 음미하고 되씹어보고 반추하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사실들이 담겨 있다”며 이 책을 ‘소문자를 집약한 르포르타주’라고 규정한다.

진정으로 이 책은 ‘소문자’들의 보물창고다. 화려하지 않지만 무덤덤하고 그래서 진정성으로 가득한 날것의 기록들. 9년의 기록으로 9개의 장인데, 여섯 쪽에 이르는 목차를 띄엄띄엄 읽어본다. 이미 한 권을 읽은 기분이다. 마스크 속 땀과의 사투, 겨울이 오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현장 정보, 제대로 알려달라. 아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원전으로 향하다. 피폭을 무릅쓰고 격납용기에 구멍을 뚫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여기서 살자. 폐로 때까지 일하고 싶지만. 쓸데없는 시찰 좀 오지 마라. 사고 당시와 달라진 게 없다. 언제까지 오염수가 새는 거야? 잊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 동료가 사망했는데도 작업은 재개된다. 결국 이대로 버려지는 것일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피폭은 우리가 당하는데 돈은 회사가 다 가져간다….

16살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원전 관련 일을 해온 세이(55·가명)씨. 원전 사고 사흘 뒤 가족들과 피난을 갔다가 4개월 뒤 고향 후쿠시마로 돌아왔다. 그는 원전을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믿고 있었다. 40년 동안 원전 일을 해온 것도 그래서다. 견고한 ‘5중 벽’이 방사성 물질을 막아내리라는 그의 굳은 믿음은, 그러나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가타야마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체르노빌 사태 때도, 미국 스리마일섬 사고 때도 다른 나라 일이라고 여겨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어요. 정부와 전력 회사의 오만이 낳은 결과입니다. 절대로 안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배신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는 ‘피폭을 무릅쓰고 격납용기에 구멍을 뚫’은 기술자다. 위험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상금은 피난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 이를테면 “이제 일 안 해도 되겠네.” 뿔뿔이 흩어져 피난지를 전전해온 가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그러나 속시원히 말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타야마 기자는 듣고 기록했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따돌림 당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린이집에서 피난민이며 ‘오염물질’이라는 시선에 갇혔다. 부모들은 오죽하면 되도록 수수한 옷을 입혀 보내 눈에 띄지 않게까지 했다. 붕괴되는 가정도 많아, 이혼이 증가하고 별거가 늘어나고 나이 많은 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있었다.

방사선이 가득해 로봇조차 작동하지 못하는 현장에서 피폭량을 꽉꽉 채워가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왜 거기서 그렇게 일하는가. 돈 때문일까? 현장에서 부대끼지 않으면 그들의 내심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가타야마가 담담히 전하는 그들의 말을 따라가 보면 전대미문의 재난을 맞이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낭떠러지에 떠밀린 상황에서 인간은 극한의 좌절을 극복해내는 희망의 유전자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힘으로 고향을 되찾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어찌 보면 만용. 그 이면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책임감도 무겁게 자리잡고 있다.

2011년 7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넉달간 일한 한 작업자(56)는 이듬해 방광과 대장, 위에 잇달아 암이 발견됐다. 전이된 것이 아니라 각각 발병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피폭에서 암 발병까지 기간이 짧아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후쿠시마에 가고 싶어 간 것이 아니라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갔다. 피폭보다 해고가 더 무서웠지만, 이제는 후회하고 있다. 7~8단계까지 이르기도 하는 원하청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수당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무리한 작업 요구에 시달리며 후쿠시마 참사에 맞서왔다.

아무리 엄청난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간다. 그러나 잊어선 안 된다는 신념으로 낱낱이 살펴보고 듣고 기록해간 가타야마 기자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8년째 되는 해에 피를 토하고 인후암 진단을 받았다. 오랜 취재 기간 가까워진 작업자들은 걱정하며 물었다고 한다. “왜 우리보다 먼저 암에 걸린 겁니까?” 이미 병으로 고통받은 한 작업자는 “닫히는 문이 있으면 열리는 문도 있다”고 위로했다. 가타야마는 지금까지도 후쿠시마에 대한 기자적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11년, 취재 노트는 220권을 넘어가고 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2013년 2월 텅스텐 조끼 수량이 부족하여 착용하지 못한 채 작업 중인 용접 기술자. 푸른숲 제공
2013년 2월 텅스텐 조끼 수량이 부족하여 착용하지 못한 채 작업 중인 용접 기술자. 푸른숲 제공
2012년 7월 후쿠시마 원전 4호기 수조에서 미사용 핵연료를 꺼내는 작업자들. 푸른숲 제공
2012년 7월 후쿠시마 원전 4호기 수조에서 미사용 핵연료를 꺼내는 작업자들. 푸른숲 제공

2019년 2월13일 후쿠시마 원전 2호기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 조사 작업 중인 작업자들. 푸른숲 제공
2019년 2월13일 후쿠시마 원전 2호기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 조사 작업 중인 작업자들. 푸른숲 제공

2014년 1월31일 후쿠시마 원전 3호기 원자로 건물의 잔해 철거 작업이 끝난 뒤 촬영한 부감 사진. 중앙 원형이 격납용기, 오른쪽이 사용후핵연료 수조다. 푸른숲 제공
2014년 1월31일 후쿠시마 원전 3호기 원자로 건물의 잔해 철거 작업이 끝난 뒤 촬영한 부감 사진. 중앙 원형이 격납용기, 오른쪽이 사용후핵연료 수조다. 푸른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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