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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명을 서열화한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 비판

등록 2022-04-29 04:59수정 2022-04-29 11:02

세계질서와 문명등급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에서 본 근대 세계

리디아 류 주편, 차태근 옮김 l 교유서가 l 3만9000원

<세계질서와 문명등급>은 중국 출신이 중심이 된 학자 11명이 지리, 법, 역사 등 나름의 영역에서 ‘문명등급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해낸, 중국 학계의 연구 성과를 담은 책이다. 문명에 등급을 나누고 서열화하는 문명등급론은 구시대의 유물 같지만, 실제론 여전히 인간의 삶과 인식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배경을 이룬다. 이 책의 작업은 “국가, 지역,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담론실천이 어떻게 현재의 세계질서를 창출”했는지 살피는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를 추구한다. 주편을 맡은 리디아 류(劉禾) 미국 컬럼비아대·중국 칭화대 교수는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 없이는 ‘문명등급’의 역사적 형성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지정학적 시공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생리학자 요한 블루멘바흐의 책 &lt;인종의 자연적 차이를 논함&gt;(1795)에 나오는 5인종 설명도. 코카서스인종(가운데)이 몽고인종·흑인종으로 퇴화하는 과정에 각각 아메리카인종과 말레이인종을 놓는 배열 방식으로 문명등급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일의 생리학자 요한 블루멘바흐의 책 <인종의 자연적 차이를 논함>(1795)에 나오는 5인종 설명도. 코카서스인종(가운데)이 몽고인종·흑인종으로 퇴화하는 과정에 각각 아메리카인종과 말레이인종을 놓는 배열 방식으로 문명등급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인 1494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토르데시야스조약’을 통해 전지구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세력 범위를 규정하는 일을 처음 벌였는데, 이처럼 국가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그 뒤 주권국가의 형성과 맞물려 오늘날 우리가 ‘세계질서’라 부르는 체제와 그 행위 규칙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문제는 여기에 문명과 야만을 가르고 문명을 등급화한 기준이 적용됐다는 사실이다. 문명으로 인정받지 못한 식민 지역은 ‘세계질서’가 제시하는 보편적 기준을 적용받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 국가 44%의 경계는 경위선 기준으로 나누어졌고, 30%의 경계는 직선 혹은 곡선의 기하학적 방식으로 나뉘었으며, 단지 26%의 경계만이 하류나 산맥 등으로 이루어진 자연적 경계선이다. 이는 오늘날 ‘세계질서’의 경관이 문명등급과 함께 형성된 것임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은이들은 지리, 법, 언어, 번역 등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정치적 무의식’처럼 새겨져 있는 문명론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리디아 류의 경우, 카를 슈미트(1888~1985)의 논의를 줄기로 삼아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전개된 서구 ‘국제법’ 논의란 건 사실상 ‘어떻게 토지를 약탈하는 것이 합법적인가’에 대한 논의와 다르지 않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슈미트는 전지구를 대상으로 삼는 지리적 측량 행위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정복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꿰뚫어보았다. 국제법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했는데, 지은이는 야만 지역에 대한 ‘무주 황무지’ 원칙이든, 반(半)문명국가에 대한 불평등조약과 영토할양·치외법권 원칙이든, 그 핵심에는 문명의 등급에 따라 보편적 기준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논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발린다. 또 전후 냉전 시기에 부상한 ‘인권이 중요한가 주권이 중요한가’ 논란을 두고, “인권을 다시 서구 세계의 문명 기준으로 전환”시키려는 움직임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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