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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녀문화’의 현실을 톺아보면

등록 2022-04-29 05:00수정 2022-04-29 10:16

[한겨레BOOK]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
백설희·홍수민 지음 l 들녘 l 1만 5000원

모든 여성은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모두 소녀 시절을 겪는다. 이 시기 여러 문화 콘텐츠를 접하며 자라는데,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는 이러한 ‘소녀문화’의 표면과 이면을 두루 살피며 질문을 던진다. 책은 디즈니, 게임,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문학, 아이돌 등을 키워드로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의 소녀문화를 짚어나간다.

디즈니의 세계엔 빛나는 공주들이 여럿 있지만 이들 각각을 살펴보면 부여된 힘에 차이가 있다. 2013년 <겨울왕국>에서야 여성 주인공에게 권능이 부여되고 왕자가 아닌 다른 여성 캐릭터와의 연대로 위기를 넘게 되지만, 여전히 디즈니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제작한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서는 비율은 현저히 적다. 게다가 “모두 ‘젊고 예쁜’ 주인공”이 등장하며, 안전해 보이는 디즈니 콘텐츠를 즐기는 동안 소녀들이 실제적으로 겪는 위협은 가려진다.

“10대 초반의 소녀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마법소녀 애니메이션들은 점차 “여성의 신체를 선정적이고 도발적으로 표현”하며 “남성적 시선”이 개입된다. 199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세일러 문>은 당시 ‘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 일하는 직장 여성’들을 본떠 만들어졌지만, “모난 곳” 없이 “일본의 전통적인 성규범이나 가부장적 규범을 근본적으로 위협하지 않”았다고 책은 진단한다.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을 긍정하게” 해주면서 정작 “여성들이 직면한 불평등한 현실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소녀문화의 한 축에는 아이돌을 응원하는 현상도 있다. 이런 응원에 유구한 경멸의 시선이 따랐지만 지금 케이팝이 세계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 데에 소녀들의 부수적 창작 행위와 소비가 큰 역할을 했음을 책은 이야기한다. 또 한편, 여성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마른 몸’과 이상적인 표상으로서 존재하길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짚기도 한다.

소녀들을 타깃으로 마케팅된 문화들을 누리기만 하다 보면 막상 이야기돼야 할 불평등한 현실들, 구조적인 성차별을 외면하게 된다는 것을 책은 일깨운다. 현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형성된 산업구조를 당장 바꿀 수야 없겠지만 이면을 외면하지 않는 예리한 감각을 벼리는 게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지은이들은 말하는 듯하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믿는 이들이 이 책의 사유에 동참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진보할지 모른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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