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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냄새는 정말로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등록 2022-05-06 05:00수정 2022-05-06 11:23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끝의 언어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
주드 스튜어트 지음, 김은영 옮김 l 윌북 l 1만9800원

영화 <기생충>이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단적으로 드러내듯, 냄새는 그 어떤 감각보다 직접적이면서도 치명적이다. <코끝의 언어>는 우연한 계기로 후각에 관심을 갖게 된 디자인 전문 작가가 쓴 책으로, 지은이는 냄새가 지닌 ‘활성’(liveness)이란 측면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냄새는 오직 그 근원과 가까이 있어야만 맡을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 몸에 저장되어 있는 어떤 기억을 일깨워 “우리를 곧바로 과거의 한 장면으로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그림이나 사진, 목소리 녹음 등 시청각 감각은 기록하고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낯선 꽃에서 맡은 향기는 그대로 전할 방법이 없다. 후각 정보는 냄새 분자와 인간의 후각 수용기가 결합하면서 만들어지는데, 어떤 분자가 왜 그런 냄새를 갖는지 등 냄새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많다. 그럼에도 인간이 코로 분간할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이론적으로 1조 가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재밌는 대목은, 다른 감각들과 달리 냄새는 언어나 논리 같은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처리 능력을 관장하는 ‘신뇌’인 시상(視床)을 거치지 않고 원시적인 ‘구뇌’의 일부인 편도체와 해마로 직접 연결된다는 점이다. 해마는 기억, 특히 개인적 서사를 구성하는 일화기억을, 편도체는 감정을 관장한다. 냄새가 다른 감각에 견줘 더 원시적이고 즉각적이며, 기억이나 감정과 더욱 깊이 얽혀 있는 이유다.

꽃과 허브 향, 달콤한 향, 감칠맛의 냄새, 흙 내음, 수지 향, 쿰쿰한 냄새, 얼얼하게 톡 쏘는 향, 짭짤하고 고소한 냄새, 상큼하게 설레는 향, 신비로운 냄새 등 지은이의 분류에 따라 갖가지 구체적인 냄새들의 실체와 그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해서까지 설명을 풀어놓는 것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른 땅의 비 냄새’(페트리코)는 우리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을 건다. ‘녹고 있는 영구동토층의 향’을 직접 맡아보기 어렵겠지만, 그것은 이산화탄소와 메탄이라는 ‘냄새 나는 트림’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에 대한 어두운 위협의 냄새도 담고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의 냄새는 다르다”며 사람의 살 냄새를 근거로 한 차별을 부추겼지만, 어떤 원주민 문화에선 서로 다른 냄새를 지닌 부족들끼리 혼인하는 것을 장려한다. 갓난아기, 멸종된 꽃들, 만들어진 냄새, 심령체, 성자의 향기, 오래된 책 등 ‘신비로운 냄새’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더욱 넓혀갈 수도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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