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땅에도 팔자와 운명이 있다”

등록 2006-02-23 18:46수정 2006-02-24 19:03

인터뷰/<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낸 배우리씨

“인사동이 전통의 동네라고 하니까 그 이름도 오래된 것 같지요? 전혀 아닙니다. 조선시대에는 인사동이란 이름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드무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조선시대 인사동의 이름은 ‘절골’, 곧 그냥 ‘사동(寺洞)’이었다. 이 사동의 ‘사’자에 당시 행정구역 이름이었던 ‘관인방’의 ‘인’자를 앞에 붙여 일제가 1914년 지은 이름이 인사동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전통거리의 대명사로 아는 인사동이란 이름은 100년도 안된 엉터리 이름인 셈이다.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는 땅이름 이야기를 이렇게 꼼꼼히 따져 알리는 사람이 배우리(66·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씨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온나라 곳곳 땅이름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땅이름 박사’ 배씨가 최근 모처럼 새 책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이가서 펴냄)을 냈다. 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으로는 지난 94년 <우리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이후 12년만에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새 책에서 배씨는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이 땅이름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와 문화를 모른다는 생각에 젊은 이들이 자주 가거나 는 동네들, 관심갖는 지역들을 주로 뽑아 소개한다. 서울 청계천의 원래 이름이 ‘청풍계천’이었으며, 벤처열풍의 중심지였던 역삼동은 말죽거리와 관련된 땅이름이고, ‘넓은 들’이란 이름을 한자로 ‘널다리’로 바꾼 판교에 큰 다리인 인터체인지가 들어와 이제 신도시로 각광받게 된 사연 등을 술술 읽어가다보면 금세 책 한권이 끝난다.

“땅 이름 보면 땅에도 팔자와 운명이 있습니다. 공항이 들어선 영종도 이름을 보면 ‘영종(永宗)’이 ‘긴마루’란 뜻인데 그 긴마루에 활주로가 들어섰어요. 강원도 양양공항은 소재지가 ‘학포리’였으니 이름대로 ‘새가 날아드는 포구’가 된거지요. 청주공항터는 더욱 기가 막혀요. 그 일대가 원래 ‘비상(飛上)리’였어요.”


배씨는 땅이름을 알면 지리와 역사를 절로 알게 되므로 땅이름이야말로 조상들이 남긴 지혜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고유의 땅이름 짓는 법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조상들이 지녔던 국토에 대한 상상력을 잊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래부터 우리 토박이말에 관심이 지대했던 배씨가 땅이름에 매달리게 된 것은 우연히 한 친구로부터 딸 이름을 우리말로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은게 계기였다. 그 때 ‘다솜이’란 이름을 지어주면서 좋은 우리말의 표본들이 땅이름 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땅이름을 눈여겨 보게 됐다. 그런데 땅이름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출판사 편집장을 때려치고 전국 각지를 누비기 시작했다. 놀란 부인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렸던 것은 물론이다.

지금은? 나이가 칠순을 바라보지만 배씨는 여기저기 글부탁과 방송출연 부탁에 응하느라 하루 일정이 빡빡할 정도로 바쁘다. 38년생 동갑나기들은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인데, 배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꿈꾸는 ‘자기 이름을 브랜드로 내건 프리랜서 전문가’로 신나게 일하고 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투자한 덕분이자, 자기 스스로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에 ‘올인’한 덕분이다. 요즘말로 하면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새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민희진, 디스패치 기자 고소… “지속적으로 거짓 사실을 기사화” 1.

민희진, 디스패치 기자 고소… “지속적으로 거짓 사실을 기사화”

‘창고 영화’ 다 털어냈더니…내년 극장가 빈털터리 될 판 2.

‘창고 영화’ 다 털어냈더니…내년 극장가 빈털터리 될 판

“하도 급해서 서둘렀다…이승만 존경하는 분들 꼭 보시라” 3.

“하도 급해서 서둘렀다…이승만 존경하는 분들 꼭 보시라”

40년전 한국 미술판 뒤흔들고 흩어진 불온한 ‘힘’을 추적하다 4.

40년전 한국 미술판 뒤흔들고 흩어진 불온한 ‘힘’을 추적하다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5.

어도어와 계약 해지한 뉴진스, 왜 소송은 안 한다 했을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