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2022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관객들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책은 정말로 오래 살아남습니다.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아 후세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미국의 문학 사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이 2011년에 펴낸 책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5세기 교황청에서 비서로 일했던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1380~1459)는 자신이 모시던 교황이 폐위된 뒤 유럽 전역을 떠돌며 옛 책들을 수집하는 ‘책 사냥꾼’으로 활동합니다.
1417년 그가 남부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발굴해 낸 한 희귀 필사본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어떤 정신의 세계를 깨워 끝내 공고한 신의 질서에 붙들려 있던 중세를 뒤흔들고야 맙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가 남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처럼 존재에는 무슨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이 없고 오직 우연이 지배하는 끝없는 창조와 파괴만 있을 뿐이라며 ‘사물의 본성’을 직시한 이 책은 탄생 직후부터 시시각각 자신을 갉아먹는 ‘시간의 이빨’을 견뎌내고 자그마치 1000년 뒤의 후세에까지 가 닿아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불온한 상상력을 전달했습니다.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책을 건축물에 비유한 소설가 김영하의 말을 듣고선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육체가 머무는 곳이 집이라면 우리의 정신이 머무는 곳은 책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에겐 우리의 집만큼이나 우리의 책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짓고, 또 오랫동안 잘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책들이 모여 있는, 도서전이라는 도시에 놀러 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는 5일까지입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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