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l 창비(1984)
<몽실 언니> 를 꺼내 읽은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한국전쟁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기에 오랜만에 다시 읽은 게 시작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이 책과 겹치고 연결된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살아있다면 여든살이 넘었을 몽실이는 먼 데 있지 않았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곧 몽실이와 같다는 걸 깨닫자 서글픔이 몰려왔다. 부산 출장 중에 만난 어린이·청소년 책방 ‘책과아이들’의 강정아 대표는 권정생 선생의 말을 빌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 ” 라 했다. 살아있으니 아픈 거라며 권정생 문학의 힘으로 인생의 고갯길을 넘고 있다 했다.
왜 이런 사연을 풀어내는가 하면 요즘 <몽실 언니>가 어린이의 읽기 능력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만 여겨지고 있어서다. 자녀가 책 좀 읽는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필독서로 <몽실 언니 > 를 권한다. 어린이의 반응은 기대와 다르다. 몇 페이지를 넘기지도 않고 대뜸 못 읽겠다고 포기한다. 부모는 기함할 듯이 놀란다. “뭐가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부모의 말처럼 <몽실 언니> 는 참 쉬운 언어로 쓰였다. 권정생 선생의 문학적 바탕에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 다시 말해 말랑말랑한 입말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몽실 언니> 는 <강아지똥> 과 더불어 권정생의 대표작이다. 겨우 열살밖에 안 된 몽실이가 홀로 갓난쟁이 난남이를 데리고 한국전쟁을 겪어내는 슬픈 동화다. 한국전쟁 중 남과 북의 대립과 가난과 폭력으로 인한 불행이 끝이 없다 .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몽실이는 새어머니에게 “인생이란 게 뭐예요?” 하고 묻는다. 인민군 최금순 언니에게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누가 더 나쁜 거여요? 누가 더 착한 거여요?” 하고 물어본다. 두명의 어머니와 금년이 아줌마를 보며 “왜 여자는 남자한테 매달려 살아야 하는 걸까?” 자문도 한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권정생 선생은 몽실이에게 들려주듯 쉬운 입말로 진실을 전한다. 정말은 다 나쁘고 다 착하며,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나면 착하게 사귈 수 있다고 말이다. 몽실이의 처지가 애가 탈 때면 직접 화자로 나서기도 한다. “하늘 아래 한 분뿐인 어머니 앞에서 몽실은 그 어머니한테 버림받을까 봐 울고 있는 것이다” 같은 구절이다. 이런 대목에선 아예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한국전쟁은 70여년 전 과거의 일이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쉬는 중에 불과하다. 권정생 선생은 말한다. “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불행이 어떤 모습인가는 몽실이가 증언한다. 어린이가 처음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읽는다면 <랑랑별 때때롱>이나 <밥데기 죽데기> 같은 해학적인 작품부터 읽기를 권한다. 절뚝거리며 위태로운 걸음으로 살아온 이들의 결핍과 불행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그때 <몽실 언니>를 읽어도 늦지 않다. ‘초5’부터.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