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어머니, 인생이란 게 뭐예요?”

등록 2022-06-03 05:00수정 2022-06-03 10:32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몽실 언니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l 창비(1984)

<몽실 언니> 를 꺼내 읽은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한국전쟁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기에 오랜만에 다시 읽은 게 시작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이 책과 겹치고 연결된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살아있다면 여든살이 넘었을 몽실이는 먼 데 있지 않았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곧 몽실이와 같다는 걸 깨닫자 서글픔이 몰려왔다. 부산 출장 중에 만난 어린이·청소년 책방 ‘책과아이들’의 강정아 대표는 권정생 선생의 말을 빌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 ” 라 했다. 살아있으니 아픈 거라며 권정생 문학의 힘으로 인생의 고갯길을 넘고 있다 했다.

왜 이런 사연을 풀어내는가 하면 요즘 <몽실 언니>가 어린이의 읽기 능력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만 여겨지고 있어서다. 자녀가 책 좀 읽는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필독서로 <몽실 언니 > 를 권한다. 어린이의 반응은 기대와 다르다. 몇 페이지를 넘기지도 않고 대뜸 못 읽겠다고 포기한다. 부모는 기함할 듯이 놀란다. “뭐가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부모의 말처럼 <몽실 언니> 는 참 쉬운 언어로 쓰였다. 권정생 선생의 문학적 바탕에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 다시 말해 말랑말랑한 입말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몽실 언니> 는 <강아지똥> 과 더불어 권정생의 대표작이다. 겨우 열살밖에 안 된 몽실이가 홀로 갓난쟁이 난남이를 데리고 한국전쟁을 겪어내는 슬픈 동화다. 한국전쟁 중 남과 북의 대립과 가난과 폭력으로 인한 불행이 끝이 없다 .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몽실이는 새어머니에게 “인생이란 게 뭐예요?” 하고 묻는다. 인민군 최금순 언니에게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누가 더 나쁜 거여요? 누가 더 착한 거여요?” 하고 물어본다. 두명의 어머니와 금년이 아줌마를 보며 “왜 여자는 남자한테 매달려 살아야 하는 걸까?” 자문도 한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권정생 선생은 몽실이에게 들려주듯 쉬운 입말로 진실을 전한다. 정말은 다 나쁘고 다 착하며,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나면 착하게 사귈 수 있다고 말이다. 몽실이의 처지가 애가 탈 때면 직접 화자로 나서기도 한다. “하늘 아래 한 분뿐인 어머니 앞에서 몽실은 그 어머니한테 버림받을까 봐 울고 있는 것이다” 같은 구절이다. 이런 대목에선 아예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한국전쟁은 70여년 전 과거의 일이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쉬는 중에 불과하다. 권정생 선생은 말한다. “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불행이 어떤 모습인가는 몽실이가 증언한다. 어린이가 처음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읽는다면 <랑랑별 때때롱>이나 <밥데기 죽데기> 같은 해학적인 작품부터 읽기를 권한다. 절뚝거리며 위태로운 걸음으로 살아온 이들의 결핍과 불행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그때 <몽실 언니>를 읽어도 늦지 않다. ‘초5’부터.

출판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