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윤한 소장이 8일 오후 자신이 쓴 책 <곤충견문락>을 들고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yws@hani.co.kr
“서울 살다 아내 직장 때문에 2002년에 경기 용인으로 이사 와 처음 생태에 관심이 생겼어요. 집 앞이 논이고 산이었거든요. 2년 뒤 지자체에서 하는 생태 안내자 교육을 받고 만 40살에 지자체 용역으로 생태 모니터링을 시작했죠.”
30대 중반 처음 자연에 눈을 돌린 손윤한(55) 생태연구소 흐름 소장은 50대 중반인 지금 생태 전문가로 불린다. 매달 10차례 정도 초중고 학생이나 교사들은 물론 생태 안내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태 강연을 한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요청으로 지역 공원 등에서 어떤 생명체가 사는지 살피는 모니터링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거미 생태를 다룬 <와! 거미다-새벽들 아저씨와 떠나는 7일 동안의 거미 관찰 여행>을 포함해 책도 7권이나 냈다. 최근작 <곤충견문락>(전 4권, 지성사)에는 그가 생태 활동을 하며 직접 찍은 국내 곤충 2720개체 사진이 만 장 가까이 담겼다.
지난 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손 소장을 만났다.
<곤충견문락>은 곤충 한 개체에 사진 4~5장을 보여주는 기존 도감과 달리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변해가는 곤충 한살이 전체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이 실렸다. 1권은 잠자리와 하루살이 등 530개체, 2권은 전 세계 곤충 개체 수 40%로 1위인 딱정벌레 중 우리 땅에 서식하는 650개체 사진이 담겼다. 3권은 전 세계 곤충 개체 수 3·4위인 벌과 파리 410개체, 4권은 2위인 나비·나방 1100개체를 각각 모았다.
4권 나비·나방 편 ‘왕오색나비’를 보니 사진이 27장이나 된다. 갈색 애벌레로 월동하거나 번데기가 되기 위해 나뭇잎 위에서 몸을 고정하고 이어 번데기 허물에서 날개돋이(우화)하는 한살이 과정이 시간순으로 펼쳐진다. 평소에는 주둥이를 둘둘 말고 있다가 먹이 활동을 할 때만 주둥이를 펴는 이 나비의 습성도 사진으로 알려준다.
곤충 책으로서 <곤충견문락>의 가치를 묻는 말에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제가 사진이 몇 장 뿐인 기존 도감으로 공부하면서 많이 답답했어요. 짝짓기부터 산란하는 모습이나 또 성충에서도 암컷과 수컷의 각기 다른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면 그 개체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나방이나 딱정벌레 사진은 그가 3년 정도 주로 강원 지역 산과 지리산을 밤에 찾아 찍었단다. “나방의 70%는 야행성이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생태 활동가들과 해가 진 뒤에 랜턴을 들고 산에 올랐죠. 평균 7~8명이 동행했어요. 제가 단톡방에 ‘밤곤충 하자’고 올리면 많은 분이 호응하셨죠. 밤곤충 관찰은 공부도 되지만 재미도 있어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는 경험이거든요.”
교회 전도사·한지 공예가로 살다
35살에 이사한 용인서 자연 발견
마흔부터 생태 모니터링·저술 나서
한달 10여차례 곤충 등 주제 강연
최근 곤충 사진 만장 ‘곤충견문락’
“우연히 눈 돌려 곤충 볼 때 행복”
이번 책을 낸 데는 절박함도 있었단다. “곤충 관찰을 하면서 ‘내가 지금 보는 모습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조그만 웅덩이를 1년 관찰했는데 다음 해 가 보니 집이 들어서 있더군요. 이런 경험을 몇 차례 겪고는 곤충 사진을 책으로 남기자는 생각이 커졌죠.”
방패광대노린재. 과거에는 제주도와 남해안,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만 관찰됐지만 요즘은 파주, 용인 등 경기권에서도 볼 수 있단다. 손윤한 소장 제공
연분홍실잠자리 암수. 충청 이남에 주로 서식했으나 요즘은 경기권에서도 자주 보이는 잠자리로 기후변화지표종이다. 손윤한 소장 제공
좀말벌 여왕벌이 거꾸로 된 호리병 모양의 집을 거의 완성했다. 손윤한 소장 제공
그는 자신이 때로는 무릎을 꿇고 혹은 누워서 곤충의 세부를 카메라에 담는 노력을 중국 고대 사상가 노자의 통찰을 끌어와 설명했다. “제가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30대 중반에 저를 잡아준 게 노자입니다. 노자는 지식을 뜻하는 한자 지(智) 자리에 밝을 명(明)을 집어 넣었죠. 명 글자 안에는 해와 달이 붙어 있잖아요. 해의 밝음과 달의 밝음을 다 봐야 진짜 밝음이 뭔지 안다는 것이죠. 곤충도 성충만 보지 말고 애벌레나 낮과 밤일 때의 모습도 보고, 곤충과 식물과의 관계도 살펴야 곤충 한 종에 대해 명한 시선을 갖게 된다는 것이죠.” 책 이름에 ‘견문’을 붙인 것도 노자 영향이란다. “자기가 보고 싶고 또 봐야만 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자연을 보자는 것이죠. 이럴 때 자연과 교감할 수 있고 자연에 대한 책임 의식도 갖게 됩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다시 신학대 공부를 했다는 그는 생태를 만나기 전에 전도사 생활을 4~5년 했고 그 뒤에는 한지공예 공방도 2년 가량 운영했단다. “박물관학에 흥미를 느껴 박물관 공부도 했고 불교를 배우려 조계사 불교 대학도 다녔죠.”
생태 중에서도 왜 곤충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생태에 처음 관심을 갖는 분들은 보통 식물에서 시작해 곤충, 새, 물속 생명체, 버섯 등의 순으로 가다 자기 분야를 찾더군요. 저에게는 그게 거미였죠.” 몸이 두 부분인 거미는 세 부분으로 된 곤충과 따로 분류된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거미를 악의 화신으로 그리며 혐오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서양 영화를 봐도 거미들이 주인공을 막 잡아 먹잖아요. 제가 거미를 보니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는 현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곤충을 ‘견문’하면서 크게 배운 것도 “오늘에 충실하기”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오늘을 못 살잖아요. 하지만 곤충은 오늘 딱 필요한 만큼 활동하고 더는 안 해요. 오늘을 충실히 사는 생명체이죠.”
그는 책 곳곳에서 기후위기 문제도 거론했다. “예덕나무 잎만 먹는다던 곤충 방패광대노린재가 버드나무 잎을 먹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충청권 아래에서 서식하던 방패광대노린재가 기후위기로 경기 지역까지 올라왔는데 예덕나무는 북상 속도가 느려 어쩔 수 없이 버드나무 잎을 먹은 것이라고 봐야죠. 넓적배사마귀는 7~8년 전만 해도 남부 지방에 가야 볼 수 있었는데 오늘 한강을 가 보니 다른 사마귀보다 더 많더군요.”
<곤충견문락>에는 어떤 예술가의 작품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곤충의 형상들이 넘친다. 곤충을 관찰하며 언제 가장 경이로웠는지 물었다. “처음엔 화려하고 예쁜 것에서 감동을 느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 감자밭의 노린재 벌레 같이 흔하게 보이는 것들이 더 경이롭게 느껴지더군요. 우연히 고개 돌려 제 주변에 항상 있었던 곤충을 처음 보았을 때가 저한테는 가장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이죠.”
계획을 묻자 그는 “지금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재미가 없어질 때 그만두겠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