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색 다 바나나
제이슨 폴포드·타마라 숍신 지음, 신혜은 옮김 l 봄볕(2022)
‘좋은 그림책’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린이의 직관에 호소하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단순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주제가 선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책이 좋다. 다만 그것이 ‘교훈’에 그치지 않으려면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림책이 아름답고 새로워야 한다. 즉 예술성을 갖춘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이다. 관념적인 말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만든 그림책을 보면 그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된다.
<이 색 다 바나나>는 사과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과가 항상 빨간 건 아냐”라는 문장이 초록색 바탕에 쓰여 있다. 그 옆에는 서로 다른 색의 네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품종에 따라 사과의 색이 다르다는 것이다. “풀도 항상 초록은 아니야”는 노란색 바탕에 쓰여 있다. 다른 설명 없이도 계절에 따라, 종류에 따라 풀의 색이 다르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구름도 늘 흰색이 아니다. 폭풍우가 칠 때나 한밤중의 구름은 모두 다른 색이다. 장미, 불의 색은 어떨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는 다채로운 색깔들에 눈이 즐겁고 기분도 좋아진다. ‘다양하다는 건 좋은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각각의 네모들이 어떤 사과, 어떤 풀을 표현하는지 떠올려 보다가 네모들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자세히 보면 붓으로 칠한 흔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색이 배열된 방식도 면마다 다르다. 그러데이션이 적용된 장면도 있고, 기준을 알 수 없는 장면도 있다. 문득 이 책은 인쇄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는 어린이가 직접 손을 대볼 수 있는 네모가 뚫려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림과 글뿐 아니라 만듦새까지 ‘다양성의 힘’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이다. 이 책을 만든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그 중대한 가치를 전달하려고 머리를 맞댔을 것이다.
그런데 다양성은 왜 그렇게 중요할까? 다양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차이가 인정되는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때 누구나 더 많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도움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면 도전할 수 있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작은 네모들을 보는 게 즐거운 것은 주제가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남, 남과 다른 나 모두 이 네모들 안에 있다.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가 한 권의 그림책에 담겨 있다.
이런 책은 천천히 볼수록 좋다. 손가락으로 네모를 하나하나 더듬듯이 쓸어가며 보자. 나와 가장 닮은 네모를 찾아보자. 다양한 색깔의 바나나와 개를 그려보고, 네모 말고 동그라미로, 세모로 표현해보자.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다. 더 좋은 건 밖에 나가 풀과 구름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다양한 색깔의 흙을 손으로 만져보자. 그림책도 다양성도 전혀 관념적이지 않다.
김소영/독서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