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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양 또는 서양이 아닌, ‘중양’의 빅히스토리 [책&생각]

등록 2022-06-17 05:01수정 2022-06-18 17:04

중동·이슬람 전문가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서구 중심 탈피해 인류 역사의 핵심 무대 조명
초고대 문명부터 거대 제국들 명멸한 오리엔트
터키 남동부 도시 마르딘의 모습. 터키인, 아시리아인, 아랍인, 쿠르드인 등이 섞여 사는 도시다. 휴머니스트 제공
터키 남동부 도시 마르딘의 모습. 터키인, 아시리아인, 아랍인, 쿠르드인 등이 섞여 사는 도시다. 휴머니스트 제공

인류본사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음 l 휴머니스트 l 3만9000원

세계를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는 버릇은 오래된 만큼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흔히 세계 4대 고대 문명으로 황하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이집트 문명을 꼽는다. 그러나 동서양을 나누고 고대 그리스-로마를 서양의 출발점으로 삼는 오래된 버릇을 따르면, 이 고대 문명들이 가야 할 제자리가 도무지 마땅찮다. 동양으로 분류되는 황하 문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3대 문명은 ‘서양’이 아니라 서양이 되레 ‘오리엔트’(해가 뜨는 동쪽)라 불렀던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동부 연안부터 지금의 터키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지역, 동부 아프리카, 지금의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인더스강 유역까지, 서구 중심의 관점에서 철저히 주변화됐던 이 지역이야말로 문명의 시원이자 오늘날까지 단절 없이 이를 이어온 인류 역사의 핵심 무대다.

중동·이슬람 전문가로 꼽히는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가 펴낸 <인류본사>는 제목 그대로 “인류문명의 모태에서 출발해서 인류역사의 본류를”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담은 책이다. 공간적으로는 아나톨리아 지역에서부터 중동, 동부 아프리카, 인도, 이베리아반도 등을, 시간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문명의 흔적인 괴베클리 테페 유적으로부터 1923년 터키공화국 수립까지 1만2000년을 다룬다. 중동사, 이슬람사 등을 다룬 양서들이 없지 않지만, 국내 학자가 하나의 흐름으로 ‘중양’의 빅히스토리를 써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값진 시도다.

흔히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하류 유역의 바빌로니아, 수메르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으로 꼽지만, 20세기의 고고학적 발견은 상류 고원지대에 그보다 앞서 6000여년 동안 이어져온 초고대 문명이 있었음을 드러내왔다. 괴베클리 테페, 차탈회위크 등에는 이를 증언하는 유적들이 있다. 지은이는 이처럼 기존에 포착하지 못했던 역사들을 특히 힘주어 복원하려 하는데, 기원전 2000년께 등장해 놀랄 만한 철기 문명을 앞세워 아나톨리아에서 통일 왕국을 세웠던 히타이트, 이집트와 전쟁을 벌인 뒤 쇠락한 히타이트를 뒤이어 대국으로 성장한 프리기아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히타이트와 이집트 사이의 전쟁은 “두 문명권이 충돌하는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이었으며, 두 세력이 맺은 평화조약은 “인류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이라 할 만하다.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의 흔적으로 알려진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 휴머니스트 제공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의 흔적으로 알려진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 휴머니스트 제공

이슬람 제지기술자가 그려진 19세기 카슈미르의 수채화. 휴머니스트 제공
이슬람 제지기술자가 그려진 19세기 카슈미르의 수채화. 휴머니스트 제공

지은이가 또 중점을 두는 것은 서구 중심주의 관점 아래 축소·폄하된 ‘중양’ 제국들의 제자리 찾아주기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인류역사상 명실상부한 최초의 대제국”으로, 이를 건국한 키루스 2세가 펼친 다문화와 관용 정책은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 문화를 지닌 지역들을 다스리기 위한 제국적인 통치 이념의 근간이 되었다. “각자의 고유한 전통과 관습을 인정하고 각 공동체의 주민들을 자기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전통은 훗날 “초기 이슬람 시대를 거쳐 오스만 제국 시대까지 이어졌다.” 페르시아 멸망 뒤에 반자동적으로 로마 제국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유프라테스강을 경계로 하여 로마와 접경하며 300여년 동안 경쟁과 협력을 되풀이했던 파르티아가 있었다. 페르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복원한 파르티아는 로마와 중국(한나라)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간 무역로를 장악하고 제국으로서 번성했다. 파르티아 뒤에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며 번성했다.

이처럼 페르시아의 전통이 뿌리내린 중동-서아시아 지역에, 6~7세기부터는 아랍인들이 세운 이슬람 나라들이 들어와 또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신흥종교인 이슬람은 태동한 지 100년도 안 돼 아라비아반도를 넘어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인더스강 동안까지 점령하며 세력을 키웠고, 8세기 중엽 아바스 왕국은 500여년 동안 ‘이슬람 제국’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중국 당나라와 벌인 탈라스 전투를 계기로 하여 중국의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에 전해지는 등 끊임없는 문명 간 교류 속에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국제성과 보편성을 갖춘, 가장 높은 수준의 학문이 발달했다. 이때 뿌려진 씨앗이 중세 유럽 문화와 근대 과학의 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또 기존 페르시아적 전통에 이어, 이슬람은 ‘관용과 포용’을 앞세워 정치적 복종과 경제적 부담을 대가로 비무슬림 피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와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전통을 만들었다. 지은이는 이 전통이 오스만 제국 등 이슬람화한 튀르크인들의 왕국에도 끊김없이 발전·계승됐다고 본다.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에 건설된 울루그베그 천문대의 모습. 휴머니스트 제공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에 건설된 울루그베그 천문대의 모습. 휴머니스트 제공

샤이진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사마르칸트 전경. 휴머니스트 제공
샤이진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사마르칸트 전경. 휴머니스트 제공

지은이는 몽골 정복전쟁 이후 14~16세기 중앙아시아에서 흥기한 티무르 제국에도 남다른 시선을 보낸다. 티무르 제국은 동서양 모두에서 약탈자나 오랑캐로 묘사되기 일쑤였으나, 지은이는 “9세기부터 바그다드에서 시작한 거대한 이슬람 르네상스는 서쪽 라인을 타고 이베리아반도에서 ‘알안달루스’ 르네상스를 일으켰고, 동방 실크로드를 따라 티무르 시대에는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로 꽃피었다”고 평가한다. 중앙아시아 토착 문화에 이란 문화가 스며들고 이슬람 문화가 외피를 감싸게 되면서 독특한 성취를 이뤘다는 것. 천문학의 비약적 발전 등 여기서 이뤄진 성취 가운데 일부가 원·명 시대 중국을 거쳐 15세기 조선, 그러니까 세종 때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기가 발명되고 농력과 천문역법이 정비되는 등 ‘조선 르네상스’로도 이어졌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 밖에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에 말리와 송가이 왕국 등 아프리카 왕국들에서 번성했던 ‘아프리카 르네상스’, 이슬람·페르시아·튀르크 유목 문화 등에 토착적인 힌두 문화를 녹여낸 무굴 제국의 성취도 재조명한다.

책을 덮으면, 들머리에서 지은이가 제시했던 집필 원칙 가운데 하나가 또렷하게 다시 떠오른다. “모든 문명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행착오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의 결실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을 존중하려 했다.” 이 오리엔트 지역이야말로 “‘다문화 다민족 공존’의 전통과 실천의 경험이 그 어떤 곳보다 풍부한 지역”이라는 지은이의 강조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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