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현실 감안해도 역사적 죄는 죄일뿐”
친일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건, 이 사람을 모를 수는 없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올바른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진상규명연대 사무처장…. 숨가쁜 이력의 끝에 그는 이제 이렇게 불린다. 김민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을 바탕으로 지난해 5월 출범한 위원회에서 그는 조사·연구에 대한 종합기획·조정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김 과장’이기 전에 역사학자 김민철이다. 20여년에 걸쳐 친일 문제에 천착해왔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아세아문화사 펴냄)은 켜켜이 쌓아올린 공력을 모아담은 책이다. 친일 문제에 대한 여러 쟁점을 쉽고 편하게 풀어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를 꺼렸다. “개인의 발언을 빌미로 시비를 걸어올 경우 그것을 해명하고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해 위원회에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그의 말문을 닫게 한 것이다. 대신 책의 주요 내용을 문답형식으로 풀어보았다.
왜 친일 문제에 매달리나요
= 한국 사회의 온갖 병폐의 뿌리가 바로 친일파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우리는 한번도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강자’라는 이유로 죄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저는 싫습니다.
김 선생님이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친일을 하지 말란 법이 있나요.
= 그렇습니다. 친일파 청산 문제를 이해할 때, ‘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으로 앞시대를 비판하지 말자’는 하버마스의 충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는 역시 당사자의 문제고 분명히 드러난 부분에 대해선 책임을 추궁해야 합니다.
친일에도 ‘정도의 차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시대적 조건이란 것도 있고요.
= 물론입니다. 직업적 친일분자와 권력에 굴복한 지식인, 저항과 협력 사이에서 줄타기한 운동가는 다릅니다. 인간행위에 대한 이해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만 이해하면 안됩니다. 예컨데 명백한 반민족행위자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협력한 사람은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분명 개인의 행위에 대해 사회가 책임져야할 몫이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의 궁극적 책임은 행위를 결단한 당사자에게 귀속됩니다.
이상하군요. 보수언론에서는 친일파 청산노력이 당대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논리’라고 비판하던데, 선생님의 말씀은 좀 다르군요. = 하하.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게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억지주장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저는 친일 문제의 핵심이 당시의 친일행위보다는 이를 보는 현재의 시선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친일파 청산의 주장이 곧잘 왜곡되는 이유를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렇다 해도 친일청산에 정부가 나서면 또다른 ‘국가의 기억’을 만들지 않을까요. = 국가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라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해체되지 않는 한 ‘국가의 기억’은 항상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와 전태일을, 월남용사와 베트남 주민을 동시에 국가가 기억하는 일입니다. 민주적 정치공동체인 국가가 공동의 기억 재구성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입니다. 독일이 그러했고 지금 우리가 일본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일입니다. 한국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이상하군요. 보수언론에서는 친일파 청산노력이 당대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논리’라고 비판하던데, 선생님의 말씀은 좀 다르군요. = 하하.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게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억지주장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저는 친일 문제의 핵심이 당시의 친일행위보다는 이를 보는 현재의 시선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친일파 청산의 주장이 곧잘 왜곡되는 이유를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렇다 해도 친일청산에 정부가 나서면 또다른 ‘국가의 기억’을 만들지 않을까요. = 국가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라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해체되지 않는 한 ‘국가의 기억’은 항상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와 전태일을, 월남용사와 베트남 주민을 동시에 국가가 기억하는 일입니다. 민주적 정치공동체인 국가가 공동의 기억 재구성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입니다. 독일이 그러했고 지금 우리가 일본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일입니다. 한국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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