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우주에 대한 기막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장자>에서 본 우화가 떠오릅니다.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이 제나라를 쳐야겠다며, 대진인이라는 현인에게 어쩌면 좋겠느냐 묻습니다. 대진인은 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촉씨 나라가, 오른쪽 뿔에는 만씨 나라가 있는데 두 나라가 때때로 서로 땅을 빼앗고자 전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땅에 떨어진 시체가 수만 구나 되고, 패잔병을 추격했다가 돌아오는 데 보름이나 걸린다”는, 한껏 과장된 ‘스펙타클’을 동원해서. 위 혜왕은 당연히 “거짓부렁”이라 반응하지만, 대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끝없는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군왕이 만씨와 무슨 구별이 있냐”고요.
하늘에 드리운 구름처럼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구만 리를 날아올라 남쪽 바다로 날아가는 붕(鵬)새 이야기도 그렇듯, <장자>에는 이처럼 상대주의적인 비유가 많이 등장합니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사실을 곰곰이 새겨본다면, 전국시대의 제후국은 달팽이 뿔 위의 한 나라에 불과하고 붕새 역시도 그보다 더 큰 존재 앞에서는 뱁새에 불과하겠죠. 모든 것을 상대화하며 ‘절대적인 무언가는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잔혹할 정도의 허무함을 선사합니다. 영원할 것처럼 타오르는 저 별들과 그 요람인 은하들도 아득한 시간 속에서 서로 부딪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길 반복할 뿐이라니, 그에 견주면 찰나도 되지 않을 우리네 삶은 정말 티끌처럼 여겨지지 않나요. 다만 이런 상대주의는 우리가 단 하나의 눈이 아닌, 여러 개의 눈을 가질 수 있도록 열어준다는 점에서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허무함이 지나간 뒤, 또 다시 겸손함이 남았습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최근 미국항공우주국이 공개한 제임스 웹 카메라가 근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용골자리성운의 우주절벽.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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