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우리들의 인생 1963~2019 고원정 지음 l 파람북 l 1만5000원 고원정(사진)이 돌아왔다. 군대라는 전체주의 구조를 비판한 대하소설 <빙벽>, 정치가상소설 <최후의 계엄령> 같은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이자 텔레비전 역사 다큐멘터리 진행자로도 인기를 얻었던 고원정이 15년의 침묵을 깨고 장편소설과 시집을 동시에 내놓으며 복귀했다. 소설 <샛별클럽 연대기>는 1962년에 시골의 한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한 화자 인호와 그 친구들의 반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등 2학년 반장선거 장면에서 시작한 소설은 주인공들의 중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을 거쳐 장년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2019년 11월의 상황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앞뒤를 감싸는 형식이다. 작가는 시간과 상황을 과감하게 뛰어넘으며 주인공들 삶의 중요한 국면들을 한 장면씩 그려 보인다. 그 때문에 이야기가 다소 성긴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생략과 압축에서 오는 긴장미가 그것을 보완한다. 주인공들이 6학년이던 1967년 2월, 학예회가 끝난 뒤 지도 교사 강창성 선생님이 인호와 미혜를 포함한 열명을 불러 기념사진을 찍고 ‘샛별클럽’이라는 모임 이름을 제안한다. 10년에 한 번씩 학교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달랑 둘만 나타나는 2007년까지 매번 참석자 숫자가 줄어드는 가운데에서도 나름대로 이어진다. 주인공들은 작가로, 공안검사로, 깡패로, 기업가로, 교사로, 정치인으로 각자의 인생행로를 밟아 나가며 병이나 사고로 중간에서 탈락하는 이들도 생긴다. 그런가 하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새롭게 모임에 추가되는 이들도 있다. 1960년대 초에서 2000년대까지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큰 비중으로 소설을 지배한다. 일제강점기와 분단 및 전쟁이 남긴 유산은 이 시골 마을 아이들의 삶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친일과 월북의 유산, 간첩단 조작 사건, 유신 독재와 그에 대한 저항, 삼청교육대, 군대 내 폭력 같은 커다란 이야기들과 함께 미혜를 향한 인호의 순정, 문학청년 요섭의 재능과 수난 등의 작은 이야기들이 어우러진다. 존재감이 희박하고 소극적인 성격인 인호를 소설 화자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소설 속 한 인물은 인호를 가리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듣는 사람”이라 표현한다.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제 문장으로 대신 풀어 놓는 사람. “격동의 시대를 말없이 견뎌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작가의 말’에 눈길이 간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파람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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