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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암흑의 유럽’ 깨운 중세 이슬람 스페인

등록 2022-07-15 05:00수정 2022-07-15 11:35

중세사학자 캐틀러스 스페인사
이슬람 침공-소멸 900년 한눈에

탈환·공존 서술 넘어 ‘편의’ 관점
아베로에스 등 이슬람철학 주목
12세기 스페인 이슬람 철학자 이븐루시드(라틴명 아베로에스, 1126~1198). 아베로에스를 비롯한 이슬람 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과 유럽 르네상스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12세기 스페인 이슬람 철학자 이븐루시드(라틴명 아베로에스, 1126~1198). 아베로에스를 비롯한 이슬람 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과 유럽 르네상스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페인의 역사
8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신앙의 왕국들
브라이언 캐틀러스 지음, 김원중 옮김 | 길 | 4만2000원

유럽 중세사학자 브라이언 캐틀러스(56·미국 볼더대학 교수)가 쓴 <스페인의 역사>는 이슬람이 지배하던 중세 스페인의 정치·종교·문화의 흐름을 새로운 관점으로 서술한 역사서다. 711년 이슬람 군대 지휘관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한 시점에서 시작해 8~10세기 우마이야 왕조, 11세기 이후 소왕국이 난립한 ‘타이파(종파) 체제’ 시기를 거쳐 북부 기독교 왕국이 주도한 이베리아반도 통일, 그리고 1492년 반도 통일 이후 잔존하던 무슬림이 모두 쫓겨난 1614년까지 900년 역사의 파노라마를 그려낸다. 스페인 역사 연구자 김원중 박사가 중세 이슬람 인명과 용어의 난마를 헤쳐 가며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은 중세 스페인 역사 연구에 획을 그은 저작으로 꼽힐 만하다. 전통적인 중세 스페인사 서술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 탈환)를 중심에 두고 이루어졌다. 중세 스페인사가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거대한 싸움의 연속이었고, 이 싸움은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스페인 전역을 탈환하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레콩키스타 관점이다. 이런 ‘문명 충돌’ 역사관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것이 ‘콘비벤시아’(convivencia, 공존)를 중심에 둔 서술이다. 이슬람·기독교·유대교가 동거하며 융합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이 레콩키스타 관점보다 진일보한 것은 맞지만, 지은이는 레콩키스타 관점이든 콘비벤시아 관점이든 역사의 일면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내놓는 대안은 ‘콘베니엔시아’(conveniencia) 곧 ‘편의’와 ‘실용’의 관점이다. “중세 스페인은 인종과 종교가 다른 공동체들이 관용이라는 고상한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편의’에 따라, 즉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함께 모여’ 함께 일하는 땅이었다.” ‘충돌’은 문명들 사이에서 벌어지기보다는 같은 문명 안에서 벌어졌고, ‘관용’도 정치적 이해관계상 쓸모가 있기에 채택된 것이었다는 얘기다. “경쟁자가 같은 종교 공동체의 일원인 경우도 많았고 동맹자가 다른 종교 집단 구성원인 경우도 많았다.” 지은이는 이런 관점을 뒷받침하는 최신 연구 성과에 입각해 중세 스페인의 흥망성쇠를 새로운 서사로 구축해 간다.

그렇다면 왜 중세 스페인 역사가 오늘날 관심의 대상이 되는가? 한마디로 줄여, 중세 스페인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근대 세계’를 만든 유럽 문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유럽사 서술은 ‘중세 후기에 고대 그리스-로마가 재발견됐고 그 재발견이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며 근대 유럽을 낳았다’고 뭉뚱그렸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고대 그리스-로마가 재발견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물음에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알 안달루스’ 곧 ‘이슬람이 지배하던 스페인’의 지식문화다. 이 스페인 이슬람 문화가 옛 영광을 잃어버리고 ‘암흑’ 속에 잠자던 중세 유럽을 흔들어 깨웠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억해 둘 것은 중세 스페인의 이슬람 문화가 더 보편적인 아랍-페르시아 이슬람 문명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그다드를 수도로 한 압바스 왕조의 이슬람 문명은 8~10세기에 최고조에 이르렀고,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유산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과학·의학·수학·문학·철학의 꽃을 피웠다. 그 문명의 물결이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까지 미쳤다. 당시 스페인 우마이야 왕조는 압바스 왕조를 모범으로 삼았다. 압바스 왕조의 생활문화와 정신문화는 이슬람 세계 전역의 이상이었다. 이슬람 스페인의 궁정인과 상류층은 세련된 중동 문화를 동경해 모든 것을 그대로 모방했다. 페르시아인처럼 격식 있게 행동하고 고급스러운 언어를 쓰고 과학·예술·철학을 논할 줄 아는 것이 ‘세련’(아답, adab)의 표준이 됐다. 앎을 추구하고 책을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아답의 핵심이었다. 이런 문화적 압력 아래서 10세기 우마이야 왕조의 압드 알 라흐만 3세는 수도 코르도바 인근에 거대한 도서관을 갖춘 새 궁전을 지었다. 그 아들 알 하캄 2세는 이 도서관을 세계 전역에서 수집한 40만권의 책으로 채웠다. 귀족과 학자들도 왕을 따라 나라 전역에 도서관을 세웠다.

그러나 10세기 이슬람 스페인의 수도 코르도바는 동쪽 압바스 왕조 수도 바그다드의 모조품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 시절 코르도바 궁정시인 이븐 압드 라비는 25권짜리 방대한 백과사전을 편찬해 그중 한 질을 바그다드 궁전에 보냈다. 백과사전을 본 페르시아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것은 우리의 지식이 그곳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백과사전은 이슬람 스페인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그 지역에서 생산된 책에 관해서는 아예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이 시기 스페인 지식인·상류층은 ‘거꾸로 된 오리엔탈리즘’ 곧 ‘동양 숭배’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동양으로부터 배우기만 하는 이런 흐름은 머잖아 뒤집혔다. 우마이야 왕조가 끝나고 타이파 시대가 열린 뒤로 이슬람 스페인은 페르시아의 압바스 왕조로부터 받아들인 것들을 소화해 새로운 지식문화를 탄생시켰다. 지식문화의 고도화는 무슬림 학자와 유대교 학자의 합작품이었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두고 유대인이 무슬림 학자에게서 배우고 무슬림이 유대교 학자에게서 배웠다. “지적 전선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가 아니라 플라톤주의자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사이에 그어져 있었다.” 이런 학문적 공조의 분위기를 타고 12세기에 이르러 이븐루시드(라틴명 아베로에스) 같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이 태어났다.

더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이 시기에 라틴 유럽에 막 등장한 대학교에서 이 이슬람 학자들의 사상을 배우려는 열풍이 불었다는 사실이다. 라틴 세계의 지식인들이 선진 이슬람 철학을 번역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라틴어로 옮겨진 아랍어 철학서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 지식의 바다에서 중세 가톨릭을 혁신한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이 탄생했고, 이슬람 학문의 견실한 합리주의 토양에서 유럽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의 싹이 솟았다. 근대 유럽이야말로 중세 이슬람의 자식인 셈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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