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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일본 근대문학의 숨은 보석들을 찾아

등록 2022-07-22 05:00수정 2022-07-22 10:21

번역가를 찾아서│유숙자 번역가
다자이 오사무에 처음 매료
슈사쿠, 소세키 등 파고들어

재일한국인 문학 연구서 펴내기도
“다자이와 이야기 나누는 상상도”

지난 7월14일, 서울 도봉구 원당마을한옥도서관에서 만난 유숙자 번역가. 그는 종종 소담한 정원을 품은 이곳 한옥도서관에서 번역 작업을 한다.
지난 7월14일, 서울 도봉구 원당마을한옥도서관에서 만난 유숙자 번역가. 그는 종종 소담한 정원을 품은 이곳 한옥도서관에서 번역 작업을 한다.

유숙자 번역가가 다자이 오사무에 처음 매료된 건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에 비할 바 없이 반일 감정이 거세고 일본 문화콘텐츠 수입조차 금지되던 80년대 무렵이다. 다자이 오사무, 엔도 슈사쿠,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일본 근대작가와 작품에 끌린 그는, 요즘 말로 ‘성지순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평범한 대학생이 일본에 가는 방법은 부산 일본영사관에서 주최한 ‘일본어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하는 길뿐이었다.

“입상자에게는 일주일간의 일본 여행이 부상으로 주어진다고 해서 지독하게 열심히 준비했어요. 얼마나 반복해서 연습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쓰고 암기한 문장들이 생각날 정도예요.”(웃음)

당시 일본 여행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훗날 그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주변의 만류와 우려를 뒤로 한 채 도쿄대학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선택하게 되는 씨앗이 됐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가 보니 외려 한국문학이 궁금해졌다.

“우리 근대문학에 끼친 일본 문학의 영향이나 상이성 등을 탐구하는 데 흥미를 느꼈어요. 그 후에는 권위 있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일본 문단의 중심에서 주목받는 재일한국인 작가들도 궁금했고요. 일본에도 한국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들의 문학세계와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지요.”

재일한국인 작가 김달수, 김석범에서부터 이회성, 김학영, 이양지, 유미리에 이르기까지 그들 문학의 전반적 흐름과 특징을 조명한 유숙자 번역가의 저서 <재일한국인 문학연구>(월인, 2000)는 본격적인 재일한국인 문학 연구서로 꼽히며 주목받았다. 당시에 생소했던 재일 시인 김시종의 시선집 <경계의 시>(소화, 2008)를 처음 한국어로 번역해 소개한 것도 그다.

지난 7월14일, 서울 도봉구 원당마을한옥도서관에서 만난 유숙자 번역가. 그는 종종 소담한 정원을 품은 이곳 한옥도서관에서 번역 작업을 한다.
지난 7월14일, 서울 도봉구 원당마을한옥도서관에서 만난 유숙자 번역가. 그는 종종 소담한 정원을 품은 이곳 한옥도서관에서 번역 작업을 한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씩씩하게 걸어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그의 삶의 태도는, 번역가로서 그의 이력과도 닿아있다. 1996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로부터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유숙자 번역가는 작가의 여타 대표작 대신 첫 창작집 <만년>(소화, 1997/민음사, 2021 완역개정판 출간)을 자신의 출판번역 데뷔작으로 골랐다. “이후 전개될 다자이 문학의 특징이 총망라되어 있어 다자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여러 대표작을 놓아두고 <행인>(문학과지성사, 2001)을 국내에선 처음으로 번역해 소개한 것, <설국>(민음사, 2002)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독특한 짧은 소설집인 <손바닥 소설 1·2>(문학과지성사, 2021) 출간을 위해 애쓴 것, 지난달 출간된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민음사, 2022)에 수록할 단편들을 각별히 고른 것도 상통되는 부분이다.

“국내에서 <인간 실격>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어둡고 나약한 문학세계가 다자이 문학의 전부인 양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그의 15년간 문필 생활은 놀랄 만큼 다채롭고 깊이 있는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지요. <달려라 메로스>는 독자가 ‘다자이 작품 맞아?’라고 느낄 만큼 유머 넘치고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다자이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단편집이에요. 독자들이 일본 근대문학을 더 가깝고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할 때, 그것이 좋은 반응으로 나타날 때, 힘들지만 번역가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오래전 첫눈에 반한 작가 다자이를 시작으로, 유숙자 번역가의 관심은 여전히 ‘일본 근대작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덕분에 애로점도 있는데, “작가들이 죄다 고인이 되신 분들이라 번역 작업 중에 궁금한 게 있어도 직접 문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고향을 여행하거나 문학관 방문, 전시회 등을 가능한 한 찾아다닌다. 최신 보도나 관련 연구서, 논문 등을 챙겨보며 파악한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 ‘작품해설’도 공들여 쓴다. 그러다 가끔은 다자이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해본다.

“물어보고 싶어요, 본인의 죽음에 대한 상념이 어떠한지. 건강은 좋지 않았지만 <사양>(민음사, 2018)이 당시 베스트셀러였고 새 작품을 의욕적으로 연재하던 참이었거든요. 하지만 굳이 무언가를 묻지 않아도, <혀 잘린 참새>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참새의 만남처럼 그저 나란히 앉아 말없이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웃음)

글·사진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민음사, 2002)

일본 작가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 은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문장과 표현들로 채워져 있고 드러나지 않는 관능미가 매혹적인” 작품이다. 당시 “남녀 주인공끼리 주고받는 묘한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어떻게 우리말로 옮길지 고심했다”고.







깊은 강 (엔도 슈사쿠, 민음사, 2007)

작가 엔도가 사후에 관에 넣어 달라고 부탁한 두 책 가운데 하나로, 만년의 작가가 마지막 열정을 쏟아부어 완성한 장편소설. “가톨릭을 소재로 했지만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인간 실존의 의미와 삶의 고뇌를 풀어낸 명작”이다.







손바닥 소설 1·2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과지성사, 2021)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손바닥 소설’ 이라 불리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짧은 하이쿠 소설을 전 생애에 걸쳐 집필했다. “가와바타 문학의 정수”라고 할 이 작품의 문장은 “번역하기 힘들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날 길 없는 늪 같은 마력이 있다”고 한다.


달려라 메로스 (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2022)

다자이 중후기 문학을 대표하는 명작선. 표제작 < 달려라 메로스> 를 비롯해 중기의 걸작 <옛이야기 > 와 단편 13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자이의 유머, 웃음, 여유와 더불어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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