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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오래된 유적에서 찾아낸 인간성의 파편들

등록 2022-07-22 05:00수정 2022-07-22 10:11

영국 고고학자의 역사 수업
36개 유적에 담긴 희로애락
가족, 집, 사랑, 상실, 죽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기원전 2900~2600년께 신석기시대 후반에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루이스섬의 칼라니시 거석.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인 루이시안 편마암을 사용했다. 윌북 제공
기원전 2900~2600년께 신석기시대 후반에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루이스섬의 칼라니시 거석.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인 루이시안 편마암을 사용했다. 윌북 제공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l 윌북 l 1만8800원

현생 인류는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온, 그러면서 자신은 결코 변치 않을 주인인 양 굴지만 우주의 나이 125억년, 지구의 나이 45억년에 견주면 찰나와 같은 시간 속에서 잠시 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세입자일 뿐이다. 먼저 떠난 ‘선배’ 세입자들이 남긴 수많은 자취들은 우리를 좀 더 겸손하게 만든다.

영국의 고고학자 닐 올리버가 쓴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는 인류의 발자취가 담긴 36개의 유적을 소재로 삼아 인간성의 깊은 근원을 묻는 책이다. 지은이는 책의 첫머리에 “인류의 진정한 문제는 구석기 시대의 감정과 중세의 제도, 그리고 신과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 한 ‘사회생물학’의 대가 에드워드 윌슨의 말을 인용한다. 그 말대로 “우리의 세계는 고대의 세계와 다른 듯 닮아”있으며, 우리가 층층이 쌓인 시간의 벽을 간신히 뛰어넘으며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들로부터 우리까지 이어져 온 근원적인 인간성이다.

1978년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 도구 사용보다 직립보행이 더 앞섰음을 말해주는 유적이다. 윌북 제공
1978년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 도구 사용보다 직립보행이 더 앞섰음을 말해주는 유적이다. 윌북 제공

탄자니아 라에톨리의 화산재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은 우리 조상이 도구를 쓰기 전부터 직립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한 가족으로 추정되는 성인 둘과 아이 하나였는데, 여성으로 추정되는 성인은 다른 두 사람과 살짝 떨어져 주위의 위험을 탐지하려 한 자취를 남겼다. 소중한 이들, 곧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 단순한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아득한 시간의 거리를 뛰어넘어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온전히 같지만은 않다. 스코틀랜드 오크니제도에 있는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 스카라 브레는 당시 누군가 죽으면 뼈만 추려내어 따로 매장을 한 풍습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유해를 아예 집 안에 간직했던 흔적도 있다. 지금의 우리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냄새와 함께했겠지만, 그들에게 “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죽음의 두려움을 잊게 하는 익숙한 내음”이 곧 집의 의미였을 것이다.

루마니아 ‘페슈테라 쿠 오아세’ 동굴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 이곳에서 발견된 화석 일부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디엔에이가 함께 나오기도 했다. 윌북 제공
루마니아 ‘페슈테라 쿠 오아세’ 동굴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 이곳에서 발견된 화석 일부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디엔에이가 함께 나오기도 했다. 윌북 제공

고고학, 과학, 역사 등을 오가는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은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기억이란 무엇이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한정된 시간을 사는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에 힘입어 더욱 빛을 발한다. 예컨대 지은이는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의 돌무더기에서 “200만년 전 인류는 식량을 집으로 가져와 기다리는 이들과 나눠 먹을 줄 아는 존재”였다고, 또 현대 유럽인 대다수가 5000년 전 스텝지대의 사막화로 서쪽 유럽으로 이동한 유목인 얌나야인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서 인류가 애초부터 “이동하는 존재”였다고 되새긴다.

최근 과학자들은 유전체 분석을 통해 각 고인류 종의 인구가 3만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그러니까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고인류의 규모가 크지 않았을 거라 추정한다. “수백만 년 동안 고작 몇 올밖에 안 되는 실낱들이 모여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조각의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낸” 셈이다. 루마니아의 페슈트라 쿠 오아세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디엔에이(DNA)를 모두 지녔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공존은 이 ‘존재의 절벽’을 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다.

지은이는 인간이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는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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