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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동물해방 없이 여성해방은 가능한가

등록 2022-08-19 05:00수정 2022-08-19 12:12

페미니스트 비건 채식주의자 캐럴 애덤스
인간/동물, 남성/여성 이원론 비판

기존 페미니즘, 동물옹호론 비판
“2인칭 관계”로 성·종간 차별 해소해야
인간도 짐승도 아닌

동물해방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캐럴 J. 애덤스 지음, 김현지 옮김 l 현실문화 l 2만6000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를 소 모습과 결합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형 광고판. 마크 호손 촬영.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를 소 모습과 결합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형 광고판. 마크 호손 촬영.
근래 동물보호단체들 중심으로 ‘물고기’라는 단어를 ‘물살이’로 대체하자는 제언이 나온다. 꼬마 때 물고기가 등장하는 귀여운 동요를 부르고 성장한 이들에게 ‘물살이’라는 제안은 입에 잘 붙지도 않고 어색하기만 하다. 이런 제안이 유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의 외연을 넓히면 우리는 농장에서 한갓지게 풀을 뜯는 소나 애니메이션 속 돼지 캐릭터를 보고 “소고기가 서 있네”라거나 “깜찍한 돼지고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분해되어 깨끗하게 포장된 덩어리들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맘 편하게 소고기, 돼지고기를 발음한다. 언어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정치적 도구 중 하나다.

책은 말한다. “어떤 동물을 ‘고기’로 바꾸면, 대단히 특수한 상황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오직 하나뿐인 누군가가 독자성도, 유일성도, 개성도 없는 어떤 것으로 변한다.” 육식 문화의 기반에 깔린 가부장제를 톺아보는 이 책에서 저자는 ‘고기’ 대신 ‘시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육식 문화에 대한 성찰을 하기 위한 첫 관문은 대규모 축산업의 비윤리적인 사육 행태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시체를 먹는다’는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은 페미니스트 비건 채식주의자이며 신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1990년 발표했던 <육식의 성정치>에 이어 4년 뒤 내놓은 후속작이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육식 소비와 가부장제의 끈끈한 결탁을 해체하기 위해서 당장 ‘시체를 먹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급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 저자는 당시까지 독자에게 낯설다는 이유로 책에서 ‘반려동물’ 대신 ‘애완동물(펫)’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금은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보편화됐다. 이 책의 일부 주장이 여전히 급진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거대 축산업과 에코페미니즘의 싸움에서 축산업의 힘이 여전히 세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칠면조 요리를 옮겨 담는 데 쓰는 도구를 홍보하며 ‘창녀 칠면조’(Turkey Hooker)라고 쓴 광고 포스터.
칠면조 요리를 옮겨 담는 데 쓰는 도구를 홍보하며 ‘창녀 칠면조’(Turkey Hooker)라고 쓴 광고 포스터.
저자는 서구 철학 전통이 “여성을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 인류를 위해 동물적인 기능을 지속하는 존재로 상정”해왔다고 말한다. 동물적 기능이란 생식과 양육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여성과 동물의 동일시는 가부장제 안에서 행해지는 물리적 폭력에서 더 구체화된다. ““존이 메리를 때린다”는 “메리가 존에게 맞았다”가 된 다음, “메리가 맞았다”가 되고, 마침내 “여성이 맞는다” 그러므로 “매 맞는 여성”이 된다”로 재구성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동물을 죽이고, 내가 그 시체를 고기로 먹는다”가 “동물은 죽임을 당한 후 고기로 먹힌다”가 되고, 그런 다음 “동물은 고기다”가 되고, 마침내 “고기용 동물” 그러므로 “고기””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여성을 때리고 동물을 죽이는 주체, 즉 가해자는 말끔하게 지워진다. 여성을 동물과 동일시하는 건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일상적이다. 여전히 젊은 여성은 “영계(chick)”라고 불린다. 광고 등에서 여성을 동물/고기로 묘사하는 일도 여전히 드물지 않다. 특히 ‘인간도 짐승도 아닌’, 여성이 처한 위계 안에서도 유색 인종은 아래를 차지한다. 흑인 여성은 짐승과 섹스한다는, 따라서 짐승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껏 강간해도 된다는 잔혹한 환상을 개발한 건 노예제 시절 지배계급 남성이었다.

여기서 기존의 페미니즘과 저자가 주장하는 에코페미니즘은 논쟁의 지점을 만들어낸다.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저항을 시작했을 때 대표적인 구호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썼듯이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였다. 이 주장은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쓰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입장이 “남성 지배적 주류 문화가 동물에게 내비치는 경멸을 페미니즘 이론 내부로 흡수한다”고 말한다. “인간/동물 경계는 공고하게 남은 채, 여성은 그 경계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다시 말해 동물처럼 학대받다가 동물을 학대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핵심은 인간/동물, 문화/자연, 남성/여성 등으로 분리하는 이원론적 사고다. 이원론의 인식틀 안에서는 자연과 종, 사회 등 모든 것이 지배와 피지배로 나뉘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건초를 싼 분홍 비닐에 돼지를 성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그려 근처 바비큐 레스토랑 광고판 앞에 배치한 영국 스카버러 지역 외곽 풍경. 캐럴 J. 애덤스 촬영.
건초를 싼 분홍 비닐에 돼지를 성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그려 근처 바비큐 레스토랑 광고판 앞에 배치한 영국 스카버러 지역 외곽 풍경. 캐럴 J. 애덤스 촬영.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이른바 동물옹호론자들의 주장과도 부딪힌다. 동물을 인격화하고 인간의 권리에 그들의 권리를 덧대는 식으로는, 즉 동물의 사육환경을 더 쾌적하게 바꾼다거나 공장식 축산업을 생태친화적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육식문화가 내포하는 가부장제라는 본질적 모순은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동물옹호론’이 아니라 ‘동물존재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을 사용해도 되는 존재로 여기는 ‘인간’의 인식론”이 여성이나 아동, 특정 인종 등 약자를 ‘사용’해도 된다는 인식론으로 연결되는 건 필연이다. 동물을 동물 그 자체, 즉 존재론적으로 바라볼 때만이 여성도, 다른 사회적 약자들도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도 짐승도 아닌’은 고기로 먹는 동물처럼 여성을 출산과 양육의 도구로만 사용하고자 했던 질곡의 표현에서 인간/동물, 남성/여성의 이원론을 해체하고 여성해방, 동물해방에 이르는 해방의 표현으로 전환된다. 저자는 ‘인간도 짐승도 아닌’ 세계는 “2인칭 관계”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2인칭 관계는 ‘그것’을 ‘너(당신)’로 부르는 관계다. 2인칭 사고를 할 때 “지식 주장은 다른 한 주체, 혹은 여러 주체의 참여를 상정하며, 그렇게 참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순간순간의 대화, 발화 행위라는 형태를 띤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르며 상호교감한다. 아무리 생태친화적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이들이라도 그들이 키우는 소나 돼지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2인칭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해 4월 도축 직전 구조돼 국내 최초로 자연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금자리(생크추어리)를 갖게 된 소들은 머위, 메밀, 미나리, 부들, 엉이, 창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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