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신화를 비판하는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을 영화로 옮긴 <로스트 도터> 스틸컷.
이번주 지면에서 소개된 네권의 책 <잃어버린 사랑> <불안>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 <재수사>가 한 묶음으로 읽힙니다. 모성 신화, 현재에 대한 죄책감,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바닥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부모의 발목을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이 책들에 담겨 있습니다.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에서 저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애착이론 등, 부모가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양육이론은 모성 신화의 현대적 변형에 가깝습니다. 지금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능력주의’와도 연결됩니다. 유구하게 강요되어온 엄마의 희생과 헌신을 지금은 ‘부모 능력주의’로 바꿔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입시 사교육에 동원되는 경제적 능력뿐 아니라 아이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능력,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능력, 최근에는 아이의 키를 키우는 능력까지 부모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호르몬 주사 요법 등으로 몇 센티라도 더 키울 수 있는 키를 부모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까지 많은 부모가 흔들립니다.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부모 책임과 이어지는 죄책감의 땔감은 불안입니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알랭 드 보통이 묘사하는 지위 불안은 나 자신에서 자식에 대한 불안으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의 말대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 불안은 한국인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 불안은 개개인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무리 쏟아부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의 구멍을 메꿀 수 없듯이 말입니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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