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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심심한 사과’ 논란, 지식인 책임은 없나

등록 2022-08-23 18:00수정 2022-08-23 18:08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둘러싸고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지난 20일 한 콘텐츠 전문 카페가 웹툰 작가 사인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자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라는 공지를 트위터에 올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 글을 읽은 일부 사용자들이 욕설과 함께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줌”,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꼭 ‘심심한’ 이라고 적어야 했나”라는 댓글을 달면서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심심한 사과’가 등장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하다’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의미의 ‘심심하다’로 잘못 이해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2019년 영화 <기생충>에 대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한 줄 평을 남겼다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명징’과 ‘직조’ 같이 어려운 말을 굳이 써야만 했냐는 불만이었다. 그런 탓인지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 세대에 걸쳐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며 대중의 문해력과 실질 문맹률을 문제 삼았다.

‘모펀카페 홍대 AK&amp;점’ 트위터 화면 갈무리
‘모펀카페 홍대 AK&점’ 트위터 화면 갈무리

문화연구자로서 대중의 문해력, 문맹률에 대한 관심도 크지만, 사실 이보다 더 주목하게 되는 현상은 한 해에 1만6000여명의 박사를 배출하는 사회, 높은 교육열과 첨단의 정보통신(ICT)기술을 구현해내는 사회에서 대중이 어째서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 지식인과 전문가에게 화를 내는 사회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굳이 한국처럼 전통적으로 문(文)을 숭상하는 사회가 아니더라도 인류는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에서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진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왔다. 그런데 최근의 사건과 해프닝을 바라보면 지식인에 대한 폄하는 물론 반지성주의 사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왜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아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이 공격당하는 사회가 되고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이자 저명한 사회비평가 러셀 저코비가 35년 전에 펴낸 <마지막 지식인>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지식인의 몰락, 지식사회와 대중의 괴리에 대해 예리한 비평을 가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없어져 버린,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부재”를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된 존재, 지식인의 실종에 대해 말한다. 어느 때보다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지만, 대학 캠퍼스에 둥지를 튼 지식인들은 공론장에서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대신 학문적 동료를 독자 삼고, 논문과 전문 학술지를 미디어 삼아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한다. 이들은 전문가로 유능할지는 모르나 이들의 지식은 공공의 삶을 살찌우는 데 이바지하지 못한다. 그 결과 대중의 반지성주의, 지식인 혐오가 커진다. 이것은 단지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최근 대통령 부인의 학위 논문 표절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과 상황들은 오늘날 우리 대학과 지식인 사회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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