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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페미니즘과 인종, 계급간 역동 탐색한 여성학 고전

등록 2022-08-27 05:00수정 2022-08-27 09:32

앤절라 데이비스. 위키코먼스 미디어
앤절라 데이비스. 위키코먼스 미디어

여성, 인종, 계급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l 아르테 l 3만2000원

미국 인권운동가 앤절라 데이비스(78)의 대표 저서 <여성, 인종, 계급>이 출간됐다. 1981년 발표된 여성학 이론의 고전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데이비스의 저작이다. 전투적인 흑인·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탁월한 이론가로 미국 민권운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무게를 따져본다면 이번 첫 출간은 너무 늦은 도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노예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흑인 해방 운동이 여성 인권 운동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부딪혔는지, 이 과정에서 ‘흑인 여성’은 어떻게 소외됐는지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가 발전시키는 개념이 ‘상호교차성’이다. “젠더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계급과 인종, 지역, 종교, 연령, 성정체성 등 다른 사회적 모순과 결합되고 교직된다.” 더 쉽게 말하면 “여성이 흑인, 노예, 가난한 사람일 때 여성성의 기준과 페미니즘 이론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해제)

예를 들어 노예제 시절 흑인 여성은 농장 등에서 남성 못지않게 가혹한 노동착취에 시달리고 소유주의 강간 등 이중의 위협에 시달렸지만 노예 거주 구역의 가정생활은 백인 중산층 가정보다 훨씬 성평등적이었다. 가정 밖에서 과도한 노동 탓에 여성이 가사 노동에 매달릴 수 없어 결과적으로 가부장제의 위계에서는 백인 여성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한편 노예제 반대 운동이 거세질 무렵 많은 백인 여성들이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산업화로 직물 짜기, 양초 만들기 등 가정 안팎에서 여성의 육체 노동이 축소됨에 따라 여성의 위상이 “남성의 부속물” “인간을 보충하기 위한 수동적인 도구”로 전락하면서 백인 남성 권력이라는 공동의 적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끝나고 흑인 남성의 참정권 논의가 본격화하자 진보적인 백인 여성의 상당수는 노예제 반대 지지를 철회한다. 흑인 남성보다 백인 여성의 권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 즉 성 차별에는 저항했지만 인종 차별에는 수긍하는 모순되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페미니즘은 인종·계급 등 사회의 다른 긴장 관계 안에서 연대하거나 갈등하며 작동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건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과 흑인 남성의 인권 운동 외곽에서 끈질기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 나간 흑인 여성의 관점이다.

책 뒷부분에서는 면면히 이어지는 강간 문화를 들여다보며 ‘흑인 강간범 신화’를 이용하는 인종주의와 여성 몸에 대한 통제,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으로 이뤄지는 임신중지 운동의 한계 등도 분석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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