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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공동을 위한 자치, 자치를 위한 디자인

등록 2022-09-02 05:01수정 2022-09-02 11:39

플루리버스
자치와 공동성의 세계 디자인하기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지음, 박정원·엄경용 옮김 l 알렙 l 2만4000원

“근대성은 식민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인식은, 이른바 ‘북반구’가 강요하는 ‘하나뿐인 세계’에 맞서 ‘다양한 세계’(플루리버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투쟁해온 ‘남반구’가 얻어낸 것이다. 개인이 선행한 뒤 세계를 파악하고 구성하는 행위가 뒤따른다고 본 서구 합리주의 전통은 ‘하나뿐인 세계’를 전지구에 퍼뜨렸고, 선주민 시대의 다양한 세계들은 이에 “존재론적으로 점령”당했다. 인류학·정치학을 연구하며 사회운동에도 매진해온 콜롬비아 출신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70)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대 석좌교수는 이 둘 사이의 “궁극적인 차이는 존재론적”이라 말한다.

에스코바르의 2016년작 <플루리버스>는 이렇듯 근대성/식민성에 의존해온 시스템이 기후·생태 등 다양한 축으로부터 무너져내리는 위기를 직시하고, 기존과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문화연구, 페미니즘, 철학, 사회운동 등 지은이는 다양한 자원들을 참조하는데, 특히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함께 ‘자기 생산’(autopoiesis) 개념을 확립한 생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1964~2001)를 많이 인용한다. 이는 책의 두 가지 열쇳말이 ‘디자인’과 ‘자치’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콜롬비아 출신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누리집 갈무리
콜롬비아 출신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누리집 갈무리

“디자인은 각각의 사물, 도구, 서비스, 서사 속에서 특정하게 존재하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창조한다.” 곧 우리는 디자인을, 디자인은 우리를 창조한다. 여태껏 디자인은 세계를 목적에 맞게 변형시키려는 서구 합리주의의 충실한 도구였다. 그렇다면 그와는 달리 ‘관계성’을 핵심으로 삼아 ‘하나뿐인 세계’가 아닌 ‘다양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가?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관계성, 물질성 등에 대한 강조를 바탕으로 문화·생태·존재적 차원에서 전환에 대한 논의가 급부상한 것은 지난 10여년 동안 전지구적으로 나타난 흐름이다. 그 배경에는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펼쳐 온 사회운동 등 다양한 실천들이 있었는데, ‘자치’를 강조한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그중 가장 기념비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은이는 마투라나·바렐라의 작업으로부터 이 ‘자치’(autonomy)야말로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스스로를 형성하는 활동의 핵심이며, 그것은 ‘구조적 결합’, 곧 구성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자치는 흔히 생각하듯 개인적 차원의 자유주의와는 별 관계가 없고, 아무런 전제 없이 이질적인 것들과 상호작용을 거친 산물이라는 점에서 공동적(communal)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논의를 통해 전지구적 차원의 대안운동들을 하나로 엮는 한편, 여기에 ‘자치 디자인’이라는 강력하고도 새로운 실천적 수단을 제시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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