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가 박혜수 작가 노트
박혜수 지음 l 돌베개 l 1만8500원 보랏빛 책을 넘기자 쿵 하고 뭔가 내려 앉는 듯, 작은 충격이 다가온다. “당신은 어떤 꿈을 포기했나요?” 질문이다. 화가의 꿈을 4학년 때 버렸다는 13살 초등학생은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그림에 소질은 있지만 미술대학 중 명문대에 들어가기 힘들고 실패하면 돈을 못 번다는 소리를 듣고서.”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도 썼다. “나는 살아가는 것일까. 살아 있는 꿈을 꾸는 것일까. 그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질문들과 답변들로 이뤄져 있다. 이 대목은 설문 ‘당신이 버린 꿈’ 중 2017년 ‘수집’한 답변들이다. 이 책을 지은 시각예술가 박혜수는 오랜 시간 묻고 답을 모아왔다. <보통의 정의> <우리가 모르는 우리> 등 여러 기획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설문조사로 묻고 이야기를 수집해 조각·설치미술 작업을 해왔다. 이 책은 이런 작업의 결과물이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또 다른 시선으로 되묻는 것은, 그 자체로 예술 작업이다. “사람들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을 묻지 못하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못하며, 지레짐작하면서 혼자 병들고 있다.” 그러니 작가는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대신해서. 꿈과 실연, 첫사랑, 나이 듦, 죽음을 열쇳말 삼아 작가는 10여년간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의 무의식 속을 파헤치고 드러내고 관찰해왔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 자신에 의한 작품 해설이라는 드문 시도”(인류학자 김현경)이면서 사회학 에세이인 셈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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