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해진 카펫, 헝클어진 머리카락까지 의문사 현장을 세밀하게 재현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디오라마 작품.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아주 작은 죽음들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가 과학수사에 남긴 흔적을 따라서
브루스 골드파브 지음, 강동혁 옮김 l 알에이치코리아 l 2만2000원
그의 취미는 살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살인사건 현장을 미니어처로 꼼꼼하게 재현한 사람이 있었다. 최초로 만든 디오라마의 실제 사건은 이랬다. 수상한 상황에서 한 남자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 사망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까지 자살 위협을 하며 계속해서 아내를 압박하는 통제욕 강한 사람이었다. 노인은 손에 밧줄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머리 위 배관에 밧줄을 걸어 한쪽 끝을 매듭짓고, 다른 쪽 끝에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목에 올가미를 걸고서 상자나 양동이나 나무함에 올라선 뒤 아내가 자기를 달래서 내려오게 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발받침이 부서지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게 목이 졸리고 말았다. 디오라마의 제작자는 사망자의 진짜 신원을 감추기 위해 이 사망 사건의 배경을 지하실이 아니라 뉴잉글랜드의 헛간으로 바꾸었다. 높이 68.5㎝, 가로와 세로는 약 60㎝의 헛간으로. 현장을 직접 관찰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의학 교육을 하기 위해 1대12 축척으로 디오라마를 만든 것이었다. 학문적 자격증이 전혀 없었음에도 미국 법의학의 발전을 이끈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로 일컬어지는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일화다.
브루스 골드파브의 <아주 작은 죽음들>은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가 과학수사에 남긴 흔적을 따라서’라는 부제처럼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1878~1962)라는 여성이 하버드대학교에 법의학과를 설립하고 미국의 법의학이 지금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은 실화를 탐사한 논픽션이다. 책의 저자인 골드파브는 법의학 수사관 교육을 받은 메릴랜드주 수석 검시관실 공공정보관. 의학, 과학, 의료에 관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도 활동 중인 골드파브는 의문사에 대한 교육과 연구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리의 디오라마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를 관리한다. 2017~2018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있었던 리의 디오라마 전시 ‘그녀의 취미는 살인’을 가능케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의문사 현장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재현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디오라마 작품.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아주 작은 죽음들>에는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디오라마로 제작된 의문사 현장과 시체의 사진들이 실려 있다. 잔뜩 해진 카펫, 헝클어진 머리카락, 식탁 위의 어수선한 식기들. 리는 ‘취미는 살인’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진짜처럼 만들어냈다. 리는 아주 작은 세부 사항을 즐겼다. 디오라마 안에 있는 “가구 대부분과 작은 물건들이 모두 작동한다. 일부 책을 펼치면 안에 글자가 인쇄되어 있으며 뜨개질감도 진짜다.” 인형들은 완전히 옷을 갖추어 입었고 속옷도 입고 있었다. 만일 당신이 15㎝의 인간이 되어 디오라마 안에 들어간다면 벽에 붙은 권투시합 광고 포스터와 교도소 감방에 휘갈겨 쓴 낙서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오라마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와 노동력의 가치는 3000~6000달러 사이로, 오늘날의 4만~8만달러에 해당한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취미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법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1945년에 리는 일주일에 걸쳐 경찰관을 위한 최초의 살인사건 세미나를 연 뒤 해마다 두번씩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경찰관들은 둔기에 의한 외상과 관통상, 질식사, 중독사, 화재, 익사 등 다양한 사망에 관한 강의를 들은 뒤 부검을 지켜보았고, 리가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라고 부른 모형을 관찰한 뒤 알아낸 것들을 바탕으로 토의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바닥 모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성급한 결론이나 판단을 내려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가설에 맞는 증거만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범죄 현장이었다. 범죄 현장을 올바른 방법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 현장에서의 오류나 실수는 수사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었다. 경찰은 범죄 현장을 서툴게 헤치고 다니며 사실을 흩뜨릴 게 아니라 관찰력을 키우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증거를 보존하고 기록하려면 경찰에게는 중요한 증거를 알아보는 눈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어질러진 집안의 집기들까지 의문사 현장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재현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디오라마 작품.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리는 1800년대 후반 시카고에서 부유하다고 손꼽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존 제이컵 글레스너의 딸이었다. 가족의 남자 구성원들이 하버드대학교 출신이었고 그 자신도 하버드 의대 진학을 원했지만, 하버드 의대에서는 여성을 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시대였다. 리는 열아홉살에 결혼해 세 아이를 낳은 뒤 이혼했지만, 일찌감치 물려받은 자산으로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리가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1살이던 1929년이 되어서였다. 검시관으로 일하던 오랜 지인 조지 버지스 매그래스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지내던 리는 갑작스럽거나 부자연스러운 사망 사건에 있어 검시관의 중요성과 법의학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당시에는 사망 사건 조사에 관한 매장물 조사관으로, 비과학적인 사인 심문을 통해 살인자 지목이라는 일을 했던(심지어 부패하기도 했던) 코로너 제도가 있었는데, 코로너 제도를 교육받은 법의학자들로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하버드 의대 법의학과의 설립을 위해 직접적이고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리는 그 자신도 법의학과 관련된 연구를 지속하고자 했으며,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라고 부른 디오라마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죽음들>은 하버드 의대 법의학과가 생기고 사라진 과정과 검시관 제도와 법의학이 자리를 잡던 시기 미국의 초상, 그리고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라는 여성이 법학, 의학, 경찰 세 분야가 모두 탄탄해야 법의학이 자리를 잡는다는 굳건한 신념을 갖고 법의학과 신설에 기여한 동시에 법의학 교육을 위한 디오라마 제작에 나선 과정을 그려낸다. (하버드 의대 법의학과는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사망하고 5년 뒤 사라졌다.) 1913년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미니어처 교향악단을 만들었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정교사에게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원했던 대학 진학은 할 수 없었던, 50대를 훌쩍 넘겨 자신의 경제적 물리적 정신적 자원을 쏟아 법의학의 토대를 닦고자 했던 리의 일대기는 열정과 집념, 애정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 모형(디오라마) 중 하나를 살펴보는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 1949년.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의문사 현장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재현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디오라마 작품.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의문사 현장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재현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디오라마 작품.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의문사 현장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재현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디오라마 작품.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이다혜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