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 드니 성당(1135~1144). 당시 서유럽 사회의 조건에 따라 성립한 고딕 건축의 건축구법을 종합해 구현해낸 사례로 꼽는다.
· 건축 생산 역사 1: 고대의 단절과 고딕 전통의 형성
· 건축 생산 역사 2: 만들어진 전통: 고전주의의 성립과 붕괴
· 건축 생산 역사 3: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모더니즘 건축의 항로
박인석 지음 l 마티 l 각 권 2만4000~2만8000원
고대, 중세, 르네상스와 바로크, 신고전주의를 거쳐 모더니즘으로 흐르는 전체 서양 예술 역사의 흐름 속에서 건축의 역사라고 해서 딱히 다르게 흘렀을 리는 없다. 다만 예술가가 ‘창작’한 결과물로 다뤄지는 다른 예술 장르들과는 다르게, 당대의 공학기술과 막대한 재원, 다양한 인력 등이 오랜 기간에 걸쳐 동원된다는 점에서 건축은 각 시대의 조건들 아래 ‘생산’된 결과물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건축 생산 역사>는 건축과 현실의 관계에 관심을 두어온 건축학자 박인석(명지대 건축학부 교수)이 ‘건축 생산’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쓴 서양건축사다. “중요한 것은 서양 건축의 형태적 특징이나 그것들에 부여되어온 ‘의미’가 아니다. (…)누가, 어떤 건축을, 어떤 담론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서 ‘생산’하였는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통사로서 다루는 흐름 자체는 다를 것 없으나, 건축이 한 시대의 총체적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건축사를 톺아보겠다는 지은이의 뚜렷한 목적의식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롭고 신선한 서양건축사를 만나게 해준다.
벨기에 이프르 모직회관(1230~1304). 상인 계급의 성장에 따라 교회당뿐 아니라 길드홀, 시청사 등 새롭게 유력 사회 계급이 된 상인들을 위한 건물들도 지어졌다.
지은이는 “건축물의 형태 양식이나 구축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규범화된, 그 규범이 생산된 사건의 전말”을 읽어내는 데 주력한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지배 세력은 둘 다 석재로 된 기둥-보 구조로 신전 같은 대형 건축물을 지었으나, 이집트 쪽의 기둥 높이와 두께가 훨씬 높고 두껍다. 이집트 왕권엔 훨씬 큰 석재를 채취하고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오리엔트에서 비롯한 아치·볼트·돔 기술을 활용해 그리스보다 더 큰 내부공간을 갖는 건물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그리스 전통의 기둥-보 구조를 유지했다. 그것이 ‘이상’으로서 이미 규범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전체 서양건축사에서 규범이 만들어지고 또 깨어져나간 몇 가지 변곡점들을 짚어낼 수 있다. ‘있는 것’보다 ‘있어야 할 것’(본질)을 추구했던 그리스·로마 전통을 좇는 고전주의는 서양 역사 전체에 면면히 흘러온 규범으로 거론된다. 그것이 규범이 될 수 있도록 만든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를 주도한 주체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전주의를 당연한 규범으로 여기는 관성에 맞서, 지은이는 13세기 서유럽에서 자생적으로 피어난 고딕 건축 생산을 주목한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럽 각지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농촌 중심의 로마네스크 건축 생산이 이어져 왔으나, 점차 도시를 중심으로 상업과 수공업이 발전하는 등 사회 구조가 변화하면서 고딕이라 부를 만한 새로운 건축 생산활동이 출현한다. 영향력이 커진 상공업 계층이 건축 생산을 위한 재정이나 기술의 주체가 되고, 처음으로 전문가 집단이 건축 생산을 주도하게 된 것 등이 배경이다. 리브볼트, 첨두아치, 플라잉 버트레스, 소첨탑 등 고딕 고유의 실용적인 특성은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규범이었다. 교회·왕궁뿐 아니라 ‘새로운 계급’을 위한 길드홀, 시청사 등이 새로운 건축 유형으로 등장한 것도 이런 맥락을 드러낸다. “고딕의 탄생과 생존은 고전주의 건축 규범이 필연적이지 않으며, 사회의 내외적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예술 및 건축 규범이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프랑스 제2제정 양식의 결정으로 평가되는 파리 오페라하우스(1861~1874). 19세기 귀족과 부르주아의 욕망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절충주의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꼽는다.
르 코르뷔지에의 부아쟁 계획(1925). 아방가르드적 항공기 디자이너이자 자동차 제조업자 부아쟁의 후원을 받아 자신의 도시계획 개념을 구체화해 전시한 것이다.
두번째 변곡점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다. 15~16세기 중세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지배세력이 된 부르주아 계급이 고딕 대신 그리스·로마를 토대로 삼아 새로운 건축 규범을 복원 또는 발명해낸 것이다. 도시귀족·상인공동체가 건축주가 되어 엘리트 건축가가 생산한 건축물들에 인문주의자들이 새로운 교양과 지식 체계로 ‘만들어낸’ 전통, 곧 고전주의 건축 규범이 도입됐다. 사실 건축물의 재료는 여전히 석재였고, 구조 형식도 고대와 중세의 아치·볼트·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고전주의 건축 생산은 물적 조건의 변화가 없는 가운데 지식 체계의 헤게모니가 규범화를 이끈 사례로, 풀뿌리처럼 자생적으로 형성된 고딕 건축 생산과 대비된다. 지은이는 이후 19세기까지 “서양 건축 역사는 지역 자생적 풀뿌리 전통인 로마네스크-고딕 건축 생산 전통과 엘리트 계층의 자의적 건축 양식인 고전주의 건축 생산 전통이 양립하며 갈등하고 절충해온 과정”이라고 본다.
고전주의는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18~19세기 모든 물적 조건이 뒤바뀌면서 사실상 ‘용도 폐기’된다. 수천년간 지속된 석재·조적조 건축이 일거에 철골조와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으로 대체된 것이다. ‘규범조차 부재하는 급속한 변화 상황’ 속에서 등장해 근대에 맞는 새로운 규범이 된 것이 바로 모더니즘이다. 지은이는 마지막 권 전체를 모더니즘 건축 생산과 현재에 할애할 정도로 모더니즘 건축에 집중한다. 독일공작연맹-바우하우스-근대건축국제회의(CIAM)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보듯, 과거의 고딕처럼 ‘실용성’과 ‘재료와 구조의 솔직한 표현’을 중시한 모더니즘 건축은 새로운 대중사회를 인식하고 그에 맞게 사회를 바꾸겠다는 실천 또는 운동이었다. 노동자 집합주거 등 모더니즘은 대중을 상대로 한 건축의 길을 열었고, 실제 위르겐 하버마스의 말처럼 “고전주의 시대 이래 최초이자 유일하게 구속력 있는 양식을, 일상의 삶의 형태까지도 규정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양식을 남겨 놓았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미국 뉴욕의 시그램 빌딩(1956~1958). 대지 중앙부에 고층 타워를 배치해 도로 사선 제한을 피함으로써 고층 건축물의 미학을 완성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도심 한복판에 귀중한 개방공간을 제공하는 효과를 연출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건설된 대단위 공공임대아파트단지 프루이트 아이고(1951~1955). 모더니즘 건축 개념을 모범적으로 구현한 서계로 찬사받았으나, 빈곤·범죄·인종차별의 온상이 되어 비판에 시달리다 철거되었다.
미국 뉴욕에 세워진 시티콥 센터(1974~1976). 기존 교회의 장소를 유지하기 위해 저층부를 비워, 도시의 ‘계획’을 앞세운 기존 모더니즘 건축과 달리 도시를 ‘객관적 체계’ 또는 ‘주어진 조건’으로 수용하고 적응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미국 뉴욕에 세워진 시티콥 센터(1974~1976). 기존 교회의 장소를 유지하기 위해 저층부를 비워, 도시의 ‘계획’을 앞세운 기존 모더니즘 건축과 달리 도시를 ‘객관적 체계’ 또는 ‘주어진 조건’으로 수용하고 적응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생산주의 유토피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은이는 “모더니즘 건축이 내걸었던 사회 개혁은 사회체제 변혁을 겨누었다기보다는 이미 변화한 사회체제, 즉 부르주아 산업생산이 지배하는 체제를 보다 완성된 상태로 만들려는 것”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대중을 향한 실천에서 멀어진 근대 건축은 형식 미학적 차원에서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주장하는 엘리트주의로 나아갔고, 근대 건축의 이상이었던 도시공간의 계획·구축은 이제 건축이 아니라 그보다 더 거대하고 복잡한 체제의 몫이다. 그렇지만 아직 새로운 규범은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아직 모더니즘의 한계 위에 서 있는 중이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현재로 귀결된다. 오늘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건축 생산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마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