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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다라’ 김성동 작가 별세…향년 75

등록 2022-09-25 13:32수정 2022-09-26 02:54

소설가 김성동. 솔출판사 제공
소설가 김성동. 솔출판사 제공

<만다라> <국수>를 쓴 김성동 소설가가 25일 오전 7시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

고인은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몰락한 유생이었고, 부친은 해방 공간에 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예비검속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한국전쟁이 나면서 대덕군 산내면 산골짜기에서 2000여명의 사상범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이런 아픈 가족사는 김성동의 삶과 문학을 지배했다. 그는 연좌제의 사슬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입산 출가해 12년간 승려 생활을 했다. 환속하고 소설가가 된 뒤에도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문학적 화두로 삼아 평생을 정진해 왔다. 작고한 평론가 김윤식은 김성동 작가와 마찬가지로 남로당 활동을 한 부친을 둔 소설가 이문구·김원일·이문열 등과 함께 그를 ‘애비는 남로당’ 계열 작가로 분류한 바도 있다.

1965년에 출가해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붙들고 씨름하던 중 1976년 <주간종교>의 종교소설 현상 모집에 ‘목탁조’가 당선했지만, 이 작품이 “악의적으로 불교계를 비방하고 전체 승려를 모독했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승적에서 제명되었다. 그해 가을 하산해 바둑 잡지 편집자 등으로 일하던 그는 1978년 중편소설 ‘만다라’를 <한국문학> 신인상에 응모해 당선했다. 작가 자신의 승려 생활을 반영한 이 작품은 젊은 승려 법운의 수행과 방황을 통해 불교계와 사회 전체의 위선과 한계를 고발한 문제작이었다.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해 출간한 <만다라>는 비슷한 무렵에 나온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함께, 종교적 주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쌍두마차로 독서 시장을 이끌었다.

공식 등단 뒤 김성동의 초기 단편들은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어린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묘사 등을 통해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는 했다. 1981년에 첫 소설집 <피안의 새>와 산문집 <부치지 않은 편지> 등을 내고 <만다라>가 영화로 만들어져 역시 흥행에 성공하는 등 인기 작가로 발돋움한 그는 1983년 해방 전후 시기를 배경으로 부친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편 <풍적>을 <문예중앙>에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사상과 활동을 다룬 부분 등이 검열에 걸려 삭제되는 일이 생기자 연재를 중단하게 된다. 이 무렵 큰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가 사흘 만에 깨어났고, 몇 차례에 걸친 뇌수술 등을 거쳐 100일 만에야 병원에서 퇴원한다.

영화 &lt;만다라&gt;의 한 장면.
영화 <만다라>의 한 장면.

그런 와중에도 그는 꾸준히 중편과 단편을 발표했고 자전적 장편 <집>과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해> 등을 출간했다. 1991년에는 1888~90년대 조선의 각 분야 예인들과 인걸들의 활약을 다룬 대하 장편소설 <국수>를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미완으로 끝냈다가 2018년에 전체 5권으로 완간했다. 2010년에는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위해 싸운 이들의 행적을 담은 열전 <현대사 아리랑>을 냈으며(2014년에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로 개정 증보판 출간), 2019년에는 좌익 활동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옥고를 치른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생전 마지막 소설집 <민들레꽃반지>를 출간했다. 남로당 아버지의 존재가 그의 필생의 문학적 화두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매달 한 번씩 찾아오던 기관원이 발길을 끊었고 그는 비로소 연좌제에서 해방되었다며 홀가분함과 서운함을 동시에 느꼈노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김성동은 2001년에 낸 <만다라> 개정판을, 소설 전체의 주제를 완전히 뒤바꾸다시피 개작해서 내놓기도 했다. 원래의 <만다라>는 주인공 법운이 ‘피안’으로 가는 차표를 찢어 버리고 속세로 달려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개정된 <만다라>의 결말은 그가 ‘피안’ 행 차표를 들고 정거장 쪽으로 달려가는 장면으로 처리된다. 이와 관련해 김성동은 “젊은 수좌 법운이 공부도 모자라고 흥분된 상태에서 저자로 내려와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승적을 벗은 뒤에도 자신의 거처를 ‘절이 아닌 절’을 뜻하는 ‘비사란야’라 이름 붙이고 집 안에 불상을 모시고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초파일에는 연등을 달기도 하는 등 승려와 비슷한 생활을 한 것과도 연결되는 설명인 셈이다.

고향 선배인 이문구가 한국 문학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스타일리스트인 것처럼, 김성동 역시 독보적인 문체를 지닌 작가였다. 어린 시절 조부 슬하에서 익힌 한학과 지금은 잊히다시피 한 순우리말, 충청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그의 문장은 번역으로는 느낌을 살리기가 불가능한 ‘조선 문체’를 구현해 보였다. 말에 관한 그의 고집과 헌신은 대하소설 <국수>에 나오는 낱말을 스스로 설명한 260쪽에 이르는 별권 단행본 <국수사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국수>를 내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말은 한독(漢毒)·왜독(倭毒)·양독(洋毒) 삼독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며 “이렇게 짓밟히고 버려진 우리말을 저라도 챙겨서 남겨 놓자고 쓴 게 소설 <국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고인은 신동엽창작기금, 행원문화상,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충북 충주 건국대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27일 오전 9시 한국작가회의와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등 문인단체들이 공동 주관하는 ‘소설가 김성동 선생 한국 문인장’으로 열린다. (043)840-8444.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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