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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새만금에도 봄이 올까

등록 2006-03-02 21:29수정 2006-03-03 16:10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몸을 의탁한 존재들
의지처가 사라지면 우리의 존재도 없다
어느날 문득 ‘침묵의 봄’이 도래하기 전에
의지처를 보살피는 게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다
세설

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당연하게 봄은 오는 것일까. 당연히 오리라고 생각한 봄이 어느날 갑자기 걸음을 딱 멈춰 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조심해야할 몸가짐들이 많다. 인간의 시간이 봄이라고 규정한 계절에 나무들이 더 이상 잎 틔우지 않고 꽃들이 피지 않는다면? 앙상한 나뭇가지를 부딪치며 여전히 겨울나무 그대로인 채 지상의 나무들이 인간의 마을을 싸늘히 내려다본다면?

1960년대 레이첼 카슨이 갈파한 <침묵의 봄>의 전언들은 저자의 공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각종 공해와 오염물질로 인한 산성토양과 산성비로 봄이 와도 더 이상 잎을 틔우지 않고 죽어간 숲이 부지기수이며 생명이 깃들지 않는 호수와 바다와 사막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는 것이 지구의 실상이다. 인간의 반생명적 착취와 무분별한 소비문명으로 인해 지구상의 무수한 생물종들의 생명활동이 공멸의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몸을 의탁한 이 별의 현실이다. 봄이 와 가장 여린 속살을 내보이며 올해도 꽃이 피고 연둣빛 새잎들이 나풀거리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당연히 올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봄이 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가 저질러 온 그간의 행태로 보건대 엎드려 그이들의 연하디 연한 몸들에 입 맞추고 감사해야 할 봄인 것이다.

올해도 고맙게 봄이 오고 있지만, 침묵의 봄이 동시에 서성거리고 있는 새만금에서 한참을 울었다. 새만금 개발을 주장하는 쪽에선 3월이 가기 전 물막이 공사를 시작하고야 말 태세다. 10년이 넘는 긴 시간 희망과 절망이 교차해온 싸움을 거쳐 도대체 이 납득할 수 없는 기이한 국책사업의 진행여부는 결국 대법관들의 법적 판단에 맡겨지게 되었다. 살아있는 갯벌의 생명순환고리를 끊어버릴 수도 있는 최종판단이 인간의 법에 맡겨진 모순을 탓하기엔 이미 늦었다. 부끄럽고 부끄럽지만, 지금은 일단 우리의 대법관들이 가장 지혜롭고 겸허한 자세로 드넓은 갯벌의 생명력과 그 생명력이 환기하는 지속가능한 미래와 갯벌과 공생하며 갯벌이 주는 것들로 평생을 살아온 새만금 주민들의 소망을 경청하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간곡하게 말하건대, 이것은 생명현상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커다란 빈 통에 콘크리트를 붓다가 중단한 것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까지 콘크리트가 부어진 채 딱딱하게 굳어가는 중에도 아이만은 양팔로 들어올려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의 얼굴 위로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일이며 살겠다고 우는 아이와 어머니를 산 채로 콘크리트 속에 매장하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사가 늦어질수록 손해가 얼마라는 얄팍한 수치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 한번 죽여버리면 다시 살릴 방도가 아득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가 전북 표심을 사기 위해 공약한 일이 새만금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정치적인, 너무나 말초적으로 정치적인 출발이었을 뿐 그 속에 생명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전북도민의 숙원사업이라며 밀어붙인 사업에 전북도민인 새만금의 주민들이 한숨을 쉰다면 이것은 정말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도대체 뭘 위해 모인 위원회인가. 환경부며 해양수산부는 여태 도대체 뭘 해왔는가. 답답하기 짝이 없는 판에 설상가상, 환경부의 ‘새만금 하구역 자연생태계 조사 보고서’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 의해 묵살, 은폐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연구원이 작성한 물막이 공사 완공 후의 해양환경 피해 연구 보고서 역시 묵살, 은폐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언론도 여야의 정당들도 너무나 조용하다는 것이다.

이 어이없는 침묵. 동네호프집이나 슈퍼마켓에서 이 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반응은 당장 이렇게 돌아올 것이다. 좀 있으면 선거잖아. 대중의 판단은 정확하다. 우리 정치권의 수준은 이것밖에 안된다. 사업 관련 부서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숙고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온 많은 시민단체와 갯벌을 살려야 한다고 믿는 수많은 시민들을 모두 바보취급 하는 게 아니라면, 문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귀기울여야 하는 게 정상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 환경에 대한 이 정권의 비전은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보다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전조는 이미 있었다. 지난해 연말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기획단에서 발표한 ‘4대 영향평가제도 개선방안’이 나왔을 때, 개발사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정책기조는 비용절감과 효율성 운운하며 4대 영향평가의 통폐합과 DB자료 활용을 언급했고, 사계절 현장조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영향평가가 거론되었다. 사계절 현장조사를 하지 않는 환경영향평가라니! 자연환경이 콘크리트 벽돌을 쌓아놓은 담벼락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인지, 생명과 생명현상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어 보이는 이 무지한 발상법이 생명과 환경철학에 대한 공감대가 전지구적 의제가 되어가는 21세기에 우리 정부가 가진 무지의 수준이다.
김선우/시인
김선우/시인
현장조사를 생략해 1년이 걸리던 평가서 작성기간을 크게 줄이고 사업자 부담을 경감시킨다는 이런 발상이 정부가 시도 때도 없이 외쳐대는 ‘혁신’인가.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별에 몸을 의탁한 존재들이다. 의지처가 사라지면 우리의 존재도 없다. 어느날 문득 ‘침묵한 봄’이 싸늘하게 도래해 있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의지처를 보살피는 것이 살아있는-살고자하는 이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생명의 두근거리는 감각이 일깨우는 황홀. 봄의 설레이는 징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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