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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몸은 위태롭다…그래서 변화를 이끌 힘이 있다

등록 2022-10-07 05:00수정 2022-10-07 22:31

올리비아 랭의 ‘몸과 자유’ 탐구
빌헬름 라이히 앞세워 따라가는

히르슈펠트·손택·드워킨 등
20세기 해방운동과 실패의 역사
영국의 작가 올리비아 랭. ⓒSophie Davidson, 어크로스 제공.
영국의 작가 올리비아 랭. ⓒSophie Davidson, 어크로스 제공.

에브리바디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l 어크로스 l 1만7800원

버지니아 울프가 여러 작품을 집필한 지역인 동시에 결국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우즈강 지역을 걸으며 울프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탐사한 <강으로>를 시작으로, 술을 사랑한 작가들을 조명한 <작가와 술>, 외로움과 도시라는 테마로 에드워드 호퍼에서부터 앤디 워홀에 이르기까지 뉴욕의 예술가들이 남긴 외로움의 단상들을 추적하는 <외로운 도시> 등의 에세이를 발표한 올리비아 랭(45)이 몸 이야기로 돌아왔다.

랭은 <에브리바디>에 실린 글을 2015년 난민 위기 때 쓰기 시작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집필을 마쳤다고 밝혔다. 그의 다른 저작들이 현재의 사건으로부터 시작했다면 이 책은 그의 가족사로부터 시작한다. 즉, <강으로> 때는 일자리를 잃었고, <외로운 도시>에서는 연인을 따라 도착한 뉴욕에서 실연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면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0대 시절부터 기후위기와 관련한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기억, 혹은 그 이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대중문화는 자주, 이상적인 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최고의 몸을 갖기 위해서 정성을 들인다. 올리비아 랭 식으로 표현하자면 “대체로 보기에 즐거운 특징들의 집합인 몸. 완벽한, 달성 불가능한 몸, 너무나 부드럽고 빛나서 사실상 생경한 몸” 말이다. 영국의 동성애규제 법령이었던 ‘섹션28’이 시행되던 1980년대에 동성애 가족에서 성장한 올리비아 랭은 몸이 가치의 위계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몸의 자유가 피부색이나 성적 특질 같은 불가피한 속성에 따라 특혜를 받거나 제한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직접 행동하는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던 그는 많은 활동가들이 그랬듯 소진되었고, 1920년대에 빌헬름 라이히(1897~1957)가 고안한 치료법을 접하게 되었다. 랭의 설명을 빌리면 라이히는 “20세기의 가장 괴상하고 또 가장 예지적인 사상가로서, 논란이 분분한 몸과 자유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었다. 라이히는 한동안 프로이트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젊은 시절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빈에서 분석가로 일하던 그는 환자들이 과거의 경험을 몸에 지고 다니며, 감정적 고통을 일종의 긴장 상태로 저장한다고 추측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긴장의 형태로 몸에 남아 성격을 경직시킨다는 ‘성격 무장’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던 라이히의 주장과 그의 삶의 국면들은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안내한다.

엘지비티(LGBT·성소수자) 운동의 선구자 히르슈펠트,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싸웠던 수전 손택, 최악의 방종으로도 그 방종에 대한 경고로도 읽히는 사드 후작, 감옥에서 탄생한 흑인 해방운동가 맬컴 엑스,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가이자 그 자신이 여성 혐오의 피해자였던 앤드리아 드워킨 등의 이야기가 그렇게 이 책에 불려나온다. 이 책은 회고록과 비평을 오가는 랭의 스타일이 가장 무르익은 형태를 갖춘 동시에, 20세기에 진행되었던 몸에 대한 전복적 투쟁들이 개인의 어떤 삶을 경유한 결과였는지 짚어낸다.

2020년대에 이 작업이 필요해진 이유는 책 바깥에 존재한다. “20세기의 해방운동이 21세기에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브리바디>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의 해방운동은 20세기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점진적인 (힘겨운) 진보와, 그 중심에 선 사상가 혹은 활동가 혹은 예술가 개인의 (생과 사를 건) 투쟁이었다. 랭은 라이히의 질문을 되풀이한다. 몸속에 살기는 왜 그리 어려운지, 왜 몸에서 탈출하거나 몸을 제압하고 싶어하는지, 왜 몸은 여전히 권력의 적나라한 근원인지.

랭은 이 책에서 서로 비슷하고 때로 상반되는 삶의 양식을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40대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수전 손택과 작가 캐시 애커의 사례가 그렇다. 손택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남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가장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처치를 요구하며 <은유로서의 질병>을 이루게 될 생각을 병원 침대에서 떠올렸다. 그와 달리 애커는 화학요법을 거부하고, 대체의학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랭은 어느 쪽의 결정이 옳았다거나 그르다는 식으로 논지를 전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편적 의료보험이 시행되지 않는 한 생존은 각 개인의 삶의 의지가 아니라 지불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들 두 사람이 마주해야 했던 실존적 어려움에 더 가깝다. 한편, 손택의 책들이 아무리 공포와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해도 죽음에 완전히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실도 있다.

빌헬름 라이히가 20대 시절 오스트리아 빈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빌헬름 라이히가 20대 시절 오스트리아 빈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위험으로부터’라는 챕터는 여성의 안전 문제가 여전히 대두되는 현실에 비추어 읽게 되는 글이다.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 앤드리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 앤절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이 연이어 언급되며, 의도와 결과가 어떻게 불일치했는지를 살핀다. 재즈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이 남편에게 구타당하면서도 흑인인권운동에 앞장서 기쁨과 자부심의 송가를 부르며 살았던 날도, 니나 시몬과 함께 싸우던 과거의 동료들이 모두 죽었거나 “추방당했거나 투옥되었거나 지하로 숨었다”고 느끼며 무대 위에서 흐느껴 울던 날도 책에 담겨 있다.

<에브리바디>는 그 불일치에 관심이 있다. 진보적인 사유와 행동은 단일한 방법으로 수행되지 않으며, 실존하는 인간의 삶은 어떤 경우에도 단순하게 재단될 수 없다. 한때는 옳았던 사상이 수많은 이들의 삶이 이루어낸 검증 과정 속에서 허점을 드러내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거나 그른 지점들을 우리는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라이히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증인이다. “우리는 어떤 변화든 영원하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취소될 수 있고, 모든 승리는 다시 싸워 얻어야 한다.” 그러니 이 책은 과거의 미래가 도달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비관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주문이 된다. “잠시 두려움 없이, 공포를 느낄 필요 없이 하나의 신체 안에 살아가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해보라. 우리가 구축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이다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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