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낮, 환한 밤
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l 문학과지성사 l 1만8000원
옌롄커는 생일 전날 밤 “신이 하사한 것 같은 영감의 거대한 세례”를 받게 된다. 중국 작가이자 자신이 쓴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의 주인공인 그는, 고향 사람 리좡의 삶을 영화화해 명예와 부를 얻겠다는 꿈을 꾸며 극도로 흥분한다. 즉각 영화계 사람들과의 미팅을 잡은 뒤 짧은 소설 한 편을 내민다. 이를 시발점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중년의 남성 농민공 리좡과 베이징대 대학원을 갓 졸업한 20대 여성 리징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좀처럼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각자 절망의 시기에 어떻게 만나 서로의 해방을 도왔는지 파고든다.
독자들은 이때부터 노련한 작가의 실험적 서술에 푹 빠지게 된다. 허구와 비허구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채워간다. 414페이지의 이 장편소설은 단편소설에서 시작돼 인물별 인터뷰로 이어지다 결국 한 편의 시나리오에 도달한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다른 디테일이 튀어나오면서 독자들은 하나의 현실에서 시작된 네 가지 허구를 공유하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으면서, 작가의 취재 수첩이나 일기장을 엿본 것 같은 다채로운 경험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진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날카롭게 다뤄 여러 번 판금 조처를 당한 옌롄커(64·
사진)는 중국에서 ‘문제적’ 작가로 꼽힌다.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중국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2018년 내놓은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끝을 가늠하고 새 도전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커튼콜을 향해 가는 글쓰기’라는 제목의 후기에서 “오늘날처럼 글쓰기가 무의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노력할 준비도 돼 있다”고 다짐한다.
앞서 2020년 <한겨레>에 한 기고
‘역병의 재난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한 문학’을 통해 문학의 시대적 역할을 강조한 바 있는 옌롄커는 이번 소설에서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문학과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훌륭한 작품은 시대의 미래를 위한 무사나 점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는 이 지점에서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